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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vs. 뉴스룸

크레도스 2014. 10. 21. 11:46

출처: http://www.mucheon.com/page2/page55/page57/index.html


뉴스룸 vs. 뉴스룸


9월 22일부터 JTBC의 뉴스9이 뉴스룸으로 개편됐습니다. 방영시간대를 기존의 9시에서 8시로 옮겼고, 편성시간도 100분으로 늘렸습니다. 공교롭게 바뀐 새 이름은 HBO의 인기 드라마인 뉴스룸과 같습니다. 흔한 재미있는 우연 중의 하나 일까요.

작년 이맘때 손석희의 뉴스9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유중 하나는 MBC 간판 스타였던 손석희가 시선집중에서 나와 종편인 JTBC로 옮긴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관련하여 국회의원 정청래가 페이스북에 올려 이슈가 됐던 글 때문입니다. 관련하여 써 둔 글이 있어 손질하여 올려봅니다.

HBO의 뉴스룸 시즌 3은 11월에 돌아옵니다. -자막천사님들
그리워요. 흑-



1. 단물 다 빠지면 쫓겨날 것

13년. 9월 말 정청래 의원이 페이스 북에 올린
‘JTBC 손석희 앵커가 불러도 안 나가는 이유’ 로 시작된 정청래 의원과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이하 정청래, 손석희)간의 설전이 재미졌습니다.

정청래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조중동은 제대로 된 언론의 기능을 하지 않고 있으며, 중앙일보의 자매회사인 JTBC는 미디어 악법으로 날치기 처리된 종편이므로 (JTBC에)출연하지 않겠다.
..JTBC도 어쩔수 없이 상업적 측면에서..“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을 영입한 것이고..(JTBC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공정방송을 하리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손석희 보도부문 사장도 단물이 다 빠지면 언젠가 쫓겨날 것입니다."



말인즉슨. 감시받지도 선출되지도 않은 권력집단인 조중동의 시청률에 보탬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죠.


손석희는 10월 5일자 한겨레 신문 인터뷰를 통해 정청래의 지적에 이렇게 반박합니다.

"시청자가 인정한다면 왜 토사구팽을 당하겠느냐. 오히려 단물을 잘 갈무리해서 버리지 못하게 하겠다."


이어진, 정청래의 ‘손석희 앵커께 보내는 공개편지’나, ‘손학규와 손석희의 셈법’이라는 끄적임은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유아적인 니편, 내편에 옹야.옹야 할 정도로 본인의 심사가 알흠답지 못합니다.

모두가 손석희 전 MBC 아나운서의 JTBC 종편행과 메인뉴스 앵커수락을 둘러싼 착잡한 시선들에 관한 일입니다.



2. 드라마. Newsroom Epi. 3

시즌 2까지 방송된 뉴스룸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통의 드라마 명가인 HBO가 편성하고 걸출한 연출자이자 극강의 극작가인 The. ‘아론 소킨’까지 합세했으니 특별한 이변도 아닙니다. 뉴스룸은 시즌 1이 방영됐던 지난번보다 시즌 2가 방영된 이번이 한국에서 더 화제를 끌었는데요, 드라마 뉴스룸 속의 무대인 ‘뉴스나이트와 앵커인 윌 맥커보이’가 ‘뉴스9의 손석희’를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의 언론사와 모회사의 지배구조도 비슷합니다. 드라마 속의 뉴스케이블 방송사 ACN이 모기업인 ACM의 연간 수익의 3%도 안되는 얼굴마담에 불과하듯, 중앙일보가 출자하여 만든 JTBC와 그 뒤에 가려진 삼성의 그림자는 비할 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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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홍석현이 직접 1,500억이라는 사재를 털어 만든 JTBC는 중앙일보와 다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실상 지배주주가 삼성인 중앙일보가 이씨의 것이라면, JTBC는 홍씨의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정파성을 분명히 하여 보수적인 시청자를 결집시키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보루’가 되는 것인 TV 조선의 방송철학과 달리, ‘방송은 재밌으면 된다’는 기조의 JTBC의 입장은 확실히 상업적이지만, 방송도 해보는 것이라는 TV조선과 신문에서 방송으로 완전한 이적을 꿈꾸는 JTBC는 목표지점부터가 다르다는 분석입니다.



황금 시간대, 케이블 방송의 간판 뉴스 앵커라는 점도 닮았습니다. 정치적 스탠스면에서 손석희에 대한 세평이 저쪽보다는 이쪽이 가까운 진보주의자라는 평가가 많은 것에 비해, 극중 윌 맥커보이는 커밍 아웃한 공화당원이지만, 극우화되는 공화당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애쓰는 중도 보수입니다.

사실. 손석희를 진보의 자리에다 꽂아놓는 세평에 이의가 있습니다. 보수. 진보. 자유. 중도에 대한 사회적으로 합의된 개념 정의가 없는게 첫 이유겠지만, 통상적으로 통용될 것이라고 ‘믿는’ 진보의 분류에 손석희를 끼워넣는 것은 부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왼쪽에서 꼬라봐도 손석희는 합리적인 보수 혹은 중도주의자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점에서도 손석희와 맥커보이는 유사합니다.


뉴스룸 시즌 1을 꿰뚫는 키워드는 ‘Tea Party’ 입니다. 자발적인 풀뿌리 시민 운동으로 시작한 이 모임이 자신의 공화당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며 맥커보이는 분개합니다.

사실, 티파티는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인 오바마의 당선에 분개한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에 의해 시작된 풀뿌리 시민운동이’었’습니다. 티파티라는 앙증?맞은 이름의 유래는 이러합니다. 2009년, 갓 취임한 오바마가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려 하자,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세금으로 부실회사를 살리려는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에 강하게 반발합니다. 그러자 보수성향의 웹사이트인 마켓티커(Market Ticker)에서 여론에 부응해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1773년, 영국의 부당한 과세에 미국 시민들이 차를 바다에 던진 보스턴 차사건처럼,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에 대해 Tea를 보내 항의를 표시하자고 제안한 것이죠. 이 제안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티파티라는 이름이 유행처럼 번진 것 입니다.

티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의 초기 지향은 개인, 작은 정부, 미국의 가치와 전통 존중 등의 종래의 공화당의 기본적인 가치 이념과 다를게 없었습니다. 개인 보다는 사회, 큰 정부, 증세를 통한 복지를 지향하려는 오바마의 정책에 이들이 반발하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 비록 그 이전 8년동안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 것이 그들의 부시 대통령이긴 했어도 말입니다. -


맥커보이는
초기 티파티를 ‘나쁜 흐름(bad trends)’에 반응하는 자발적인 중산층 운동으로 호평 합니다. 체내에 침입한 세균에 반응하는 백혈구처럼 악화되는 경제상황 속에서 실업과 임금하락이 이어지는데도 주범인 월 스트리에서 돈 잔치를 벌이는 부당함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었죠. 문제는, 그 운동이 오염됐다는 것입니다.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이 보수주의 시민운동에 급진우파가 끼여들면서 이들은 급격히 합리성을 잃고 과격성과 정파성을 띄기 시작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백혈구를 잡아먹는 세균으로 악성화 된 것입니다.

마치 1960년대의 미국 신좌파운동을 이끌었던 SDS(민주사회학생연합, Students for Democratic Society)가 제리루빈이나 애비 호프만과 같은 급진 강경파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초기의 비교적 온건했던 활동방식에서 벗어나 폭력으로 점철된 분열과 혼란 끝에 1969년 해체되고 만 것처럼, 사라 페일린 같은 극우 공화당원에게 이끌리는 티파티 운동이 결국은 공화당을 망쳐버릴 것이란 극심한 우려였죠.


맥커보이를 각성시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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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arty’s being hijacked and it is happening real time. The story every night till the plant from Little shop of horrors goes back to it’s planet. “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지금 실시간으로 납치되고 있다고! 이 흡혈귀들이 제 행성으로 돌아가기까지 매일 저녁 이들의 만행을 고발하겠어!”


ACN의 ‘뉴스 나이트’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3. 현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다루겠다."


는, 뉴스9의 첫 일성에도 불구하고 손석희를 불편하게 보는 시선은 여전합니다. 변절은 아닌가? 왜 종편의 얼굴마담으로 부역하는가? 돈 때문인가? 반올림과 삼성보도에 대한 비판과 환호는, 이러한 불안과 기대에 대한 반영입니다. 손석희가 손석희임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뉴스 나이트’의 맥커보이가 공화당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티파티에 분노한다면, 우리나라에도 악성화된 한국형 티파티가 있을까요.

아니. 우리나라는 애초에 보수당과 티파티(극우 보수 세력)의 구분이 무의미합니다. 이미 새누리당, 한나라당, 신한국당, 민자당, 민정당 등에 이 모든 것이 다 혼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보수정당안에 극우세력이 끼어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극우 세력안에 한 줌도 안되는, 강경보수, 온건보수, 합리보수가 좌판을 걷었다 펼쳤다 해 온 것 이 대한민국 보수당의 서글픈 정당사입니다.

이는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도 마찬가집니다. 민주당, 통합 민주당, 열린 우리당, 새천년민주당, 민주당, 평화민주당 등 당명변경을 IOS업그레이드만큼 자주 해 온 이 당의 정체성이 진보인지라는 고민 전에, 이 당과 새누리당의 구별부터가 확연치 않았던게 현실입니다. 아주 너그럽게 보아 넘기더라도 진보당의 거죽을 쓴 보수당이라고나 할까요.

전혀 진보스럽지 못한 통합진보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정의당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은, 극우보수당과 보수당과, 극좌파(?)가 다수인 중도층을 대변하는 요지경입니다.



"저널리즘의 역할이 깊게 파인 한국 사회의 골을 메우고 싶다."


JTBC로 자리를 옮긴 이유에 대해, 손석희는 저리 말했습니다.


저널리즘의 역할이란, 언론은 무엇을 보도해야 하는가란 고민에 대한 결과여야 합니다.
언론은 무엇을 보도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드라마 뉴스룸에서 총괄 PD인 맥켄지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1.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
2. 가능한한 가장 올바른 방식의 토론
3. 사회적으로 논의될 가치가 있는 정보
4. 옳고 그름이 명백한 정보



민주주의하에서 저널리즘의 역할은 명백합니다. 뉴스는 새로운 소식이나, 시청자들이 흥미를 느끼는 소식을 전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이마트 전단지처럼, 상품명과 상품사진과 가격만을 던져주고 소비자에게 선택과 책임을 전가하는 기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민주주의하에서 보도하는 모든 언론의 제1지침은,
이 보도가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가. 이 보도가 민주주의를 기능하게 도움이 되는가에 맞춰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보도로, 유권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 언론은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그 관점들이 잘 추려질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는 장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흥미있는 정보가 아닌, 가치있는 정보가 살아남도록 조명하여야 하고, “기계적인 형평성”이 아닌 정보의 가치에 편파적이어야 합니다. 옳은 것은 옳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손석희가 인용한 저 말은, 르몽드지의 창간자인 위베르 뵈브메리의 말입니다.

Dire la vérité, toute la vérité, rien que la vérité,
dire b
êtement la vérité bête,
ennuyeusement la v
érité ennuyeuse,
tristement la v
érité triste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그른 것은 그르게, 더러운 것은 더럽게, 흉한 것은 흉하게, 분노스러운 것은 분노스럽게 보도하라.

왜. 유권자를 위해서. 민주주의의 올바른 작동을 위해서.



4. 다시 뉴스룸 Ep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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횽아야, 뉴스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명대사가 뭐에요?
요세미티?!



뉴스룸 시즌 첫방은, 맥커보이의 방송사고로 시작합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열린 대담에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인 이유를 이야기 해 달라는’ 한 여학생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기 때문입니다.


"… 왜 미국이 위대한 나라냐고? 비문맹률 7위, 수학 27위, 과학 22위, 기대수명 49위라고. 우리가 수위를 다투는 것은 3개밖에 없어. 인구당 감옥에 가는 비율, 천사가 진짜라고 믿는 성인 비율, 국방비 비율. 이게 다라고. 너넨 지금 미국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처한 세대라고. 그런데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인 이유를 들어달라고. 왓. 더. x.x.x. 무슨 난장이 똥자루 떨구는 소리를 하는거야.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있어서?"


자아비판 현실인식에서 시작되는 이 방송사고로 맥커보이는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게 되고, 맥켄지가 구원투수로 등판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뉴스룸 2.0의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아론소킨의 이 엄정한 자기비판은 사실 처음이 아닙니다.



4-1. 드라마. Studio 60 on the Sunset Strip

비운의 걸작인, 2006년에 아론 소킨이 제작한 Studio 60 on the Sunset Strip도, 극중 총괄프로듀서인 웨스 맨델의 방송사고로 시작됩니다. 생방송 중인 쇼에서 맨델은 작금의 미국의 쇼 비즈니스가 처한 위치를 적나라하게 비판합니다.



"이 쇼는 정치,사회적 이슈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쇼였습니다. 하지만, 시청률만 신경쓰는 방송사에 의해 멍청하고 바보같은 쇼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본에 장악된 방송은 시청자들에게 곱씹을 거리를 주지 않습니다. 멍청한 12살짜리 아이들도 이해할만 내용이 아니면, 방송을 타지 못합니다.

예전에는 작품성과 상업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작품성은 더 설 자리가 없습니다. 방송은 사람을 더 비열하게, 더 쓰레기같게, 더 싸구려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돈 때문에 벌레를 먹고,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화면에 음악과 로고를 붙여 내보냅니다. 방송은 이제 포르노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니. 포르노보다 못하기까지 하죠. 무력하고. 쓰레기로 가득찬 매춘업소가 바로 방송계입니다."



그 발언을 끝으로 Studio 60 on the Sunset Strip를 만든 전설적인 제작자인 맨델은 해고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이 작가인 맷과 프로듀서인 데니죠. 바로 매튜 페리와 브래들리 휘트포트.


Studio 60의 창조자인 웨스 맨델의 애제자였던 맷과 데니가 Studio 60를 떠나야했었던 이유는 5년전의 9.11 때문이었습니다. 9.11 직후 대대적인 반테러 분위기에서 맷이 빌 마허를 옹호했다는 설정입니다 -이는 실제, 조지 부시가 테러범들을 겁쟁이로 비하하자, 언론인 빌 마허와 비평가 수잔 손탁 등이 순교자들을 겁쟁이로 비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여 큰 사회적 물의가 있었던 실화를 빗댄 것입니다- 결국 맷은 사과를 거부하고 Studio 60를 떠납니다.

여기서 존재하는 갈등은 애국입니다. 누가 더 애국적이냐. 덜 애국적이냐.
극중 Studio 60를 소유한 방송사 이름인 NBS(National Broadcasting System)는 미국의 3대 공영방송인 NBC, ABS, CBS를 꼬집고, 드라마의 타이틀인 Studio 60 on the Sunset Strip은 전설적인 코미디쇼인 SNL(Saturday Night Live)을 풍자합니다. 아론 소킨은 미국 지상파들의 정신 나간 애국논쟁과 이중성을 NBS라는 이름을 빌려 통렬하게 꾸짖는 것이죠. 맷이 꿈에 그리던 Studio 60 총괄제작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던진 말은 이것입니다.


"
엄마나 여자친구에게가 아니라면 내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는 하기 싫어… 9.11 직후 난 부시가 하는 짓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많았지만 아무말도 안 했어. 겁이 났었거든. 하지만 그 후 5주 동안에도 난 계속 겁을 내고 말을 삼켰다고. 그건 틀린 일이야. 다 큰 남자가 그렇게 오래 겁을 먹어선 안된다고!"


쇼 비즈니스의 포르노이즘, 근본주의적인 종교세력, 이라크전, 9,11 등 다양한 정치. 사회 문제를 다뤘던 이 드라마는 웨스트 윙의 헐리우드 버전으로 불렸지만, 시즌 1. 22 Epis.를 끝으로 종영해야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기종영의 이유는, 드라마의 수준이 너무 높아, 시청률이 저조하다는 것이었죠.

여하튼 뉴스룸은 Studio 60 on the Sunset Strip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무대를 Sunset Strip에서 스튜디이오에서, ACN의 뉴스 나이트로 옮기고, 9.11 이후의 애국논쟁에서, 오바마 이후의 이념논쟁으로 장을 바꾼 것입니다.



5. 갈등

맷과 데니의 해고가 9.11로 촉발되고, 맥커보이의 시련이 오바마의 당선으로 시작됐다면, 손석희의 종편행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요.


잘못된 펌웨어로 업데이트한 안드로이드 폰 마냥, 친일과 부역자들로 첫 단추를 꿴 대한민주 공화국의 원죄일까요. 너무 멉니다. 좀 더 화각을 좁혀 봅시다.


대한민국의 9.11은 2002년의 노무현의 당선이었습니다.

지지부진하게 프로요와 진저브래드로 질질 끌어오던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갑자기 젤리빈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버린 것이죠. 이전까지의 빨갱이 논쟁이 우파와 좌파로 컨버팅 되었고, 기득권과 수구세력의 대대적인 반격이 보수. 진보의 이념 논쟁으로 포장되어 배포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자의적인 정의들로 여론은 아수라장이 되어갔고, X세대만 몰랐던 X세대의 정의처럼, 시민들은 누군가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규정되어야 했습니다.


전향한 주사파와 좌파들의 주축으로 시작된 뉴라이트 운동이 본격적으로 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의 탄핵사건이 있었던 2004년부터였고, 뉴라이트 전국연합이란 전국적인 보수운동 조직으로 탈바꿈한 것은 2007년의 대선 전후입니다. 뉴하지도 풀뿌리적이지도 않아 보이는 이 조직은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의 이념지형에 분탕질을 쳐 왔으며, 최근의 교과서 사건에서 보듯이, 김구 선생이 보셨다면, ‘이적 행위’라고 통탄해 마지 않았을 만행들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복고는 어김없이 돌고돌아, 5년 동안 전국을 휩쓸던 사회주의, 좌파, 급진 좌파란 규정들은, 지난 대선을 거치며, 종북이란 용어로 다시 회귀했습니다. Studio 60와 뉴스룸의 갈등이 9.11 후의 애국논쟁과 오바마 당선 후의 이념논쟁으로 옮겨간 것이라면, 정반대로 대한민국의 갈등은 노무현 당선 후의 이념논쟁과 박근혜 정부 출범 후의 애국논쟁 속에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이죠 - 참조. 글을 쓴 시점이 노무현 정상대화록 논쟁으로 정국파행이 지속되던 때 입니다- .


논쟁의 주체는,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입니다. 보수는 진보더러 덜 애국적이라 비난하고, 진보는 보수에게 자신의 조국 사랑을 입증하려 안간힘을 씁니다. 보수는 진보더러 대선불복이라 힐난하고, 진보는 보수에게 부정선거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현실세계에서 논리와 대화로 입장이 다른 상대방을 설득한다는 것은 ‘망상’에 가깝습니다. 이 둘은 서로 등을 맞대고 돌아선채 벽을 보고 ‘같은 말’만 외칠 뿐입니다.


“나만 옳다”


손석희가 주목한 것은 이것입니다. 누구를 향해 보도 하여야 하는가.



6. 중도. 그 조용한 주류

2011년에 있었던 한겨레의
국민 이념성향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여년간 스스로의 이념성향을 중도라고 밝힌 비율이 꾸준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최근 서울시 산하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수행한
의료복지 정책 지지도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조사에서는 2012년 10월 기준, 서울시민의 39%가 스스로를 중도층(보수층은 35.2%, 진보층은 25.8%)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11월 22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당지지율을 보면, 최대한 보수적으로 해석하더라도 새누리당 43%, 민주당 21%, 지지정당 없음이 33%였습니다.


조선대 지병근 교수의 ‘한국인의 이념적 성향과 민주주의 인식’이라는 발표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주요가치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는 매우 중층적입니다. 예컨대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82.1%가 긍정하고, 언론기관의 정부비판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 78.9%가 반대하지만, 질서유지를 위한 집회 및 시위의 금지에는 54.4%만이 반대한다는 것이죠.
선거가 중요한 이유를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기 위해서라는 응답한 사람은 25.8%에 불과하지만, 경제적인 여유와 부의 창출 때문이라고 대답한 수치는 74.2% 월등히 높았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럼에도 국부창출이나 경제발전 보다 빈부격차 완화나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81.3%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한국 시민들은 인권이나 자유,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적 내재적 가치보다는 국가안보나 경제발전 등의 외재적 가치에 더 호응하면서도 동시에, 복지국가의 실현과 같은 내재적 가치에 대한 강한 욕구가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해당 논문의 결론입니다.


대한민주 공화국이 누구를 위한 정부이냐는 물음은, 대한민주 공화국은 누구의 이익에 반응해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맞 닿습니다. 만약 이에 대한 답이 다수(Majority of the People)라면, 대한민국은 중도 공화국입니다. 보수’만’의 나라도 아니고 진보’만’의 나라도 아닌 것이죠.

하지만 중도’적’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은 있어도, 중도층을 위한 정당은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안철수의 착점은 여기 있’었’을 겝니다.



그럼, 앞서 말한대로 저널리즘의 원칙이, 유권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의 제공이라면, 다시 당연한 물음이 따릅니다.

왜 최대 유권자인 중도층을 위한 방송.보도는 없는가?



7. 시지프스의 진보

이른바 집토끼로 불리는 고정 지지층 외에, 누가 중도층을 설득하느냐에 따라 국정의 방향이 바뀐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여기서 더 절실한 것은 진보입니다.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보수는 수세만 펼쳐도 이기지만, 진보는 공세없이는 현재의 수적 열세를 만회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설득의 대상입니다. 보수는 43%에 달하는 집토끼만 설득해도 우세를 펼칠 수 있지만, 진보는 집토끼만으로 판을 뒤집을 수 없습니다. 구애를 하여할 대상이 명확한데도 진보는 공세를 위한 화력의 대부분을 보수를 향하여 겨냥하고 있습니다.

진보들만 사는 언덕에서 영원히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로 지내는 것입니다.


혹자는 참호를 더 깊히 파서 진지를 공고히 하는 것이 작금의 수세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말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화 속에서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는 고립입니다. 진보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보수의 공세보다 홀로 남겨지는 것일 테죠.


깨어있는 시민과 깨시민의 차이는 합리성입니다. 진영논리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 몸을 훑는 것. 저쪽에 요구하는 합리적인 보수만큼, 이쪽도 합리적인 진보가 되어야 합니다. 손석희에 대한 우려는, 호랑이굴에 들어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트라우마 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선택은 호랑이굴로 향한 끊임없는 독려와 격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뉴스룸 2.0처럼, 진보 2.0도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고통스럽지만, 정청래 의원의 ‘손학규와 손석희의 셈법’을 짚고가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좀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멍청아, 문제는 중도라고!

- 이에 대해 이번 민주당은 그 고민의 결과를 올해 멋진 화답으로 여실히 시민에게 돌려주었습니다. 6.4 지방선거, 7.30 보선까지 줄기차게 ‘세월호 심판’을 외치다가 선거가 끝나자마자 새누리당과 ’세월호법’ 합의에 입을 맞춘거죠. 혹자는 이것을 여론의 심판을 겸허히 수용한 것이라 자평합니다. 세월호 심판을 기치로 내건 2번의 선거에서 사실상 참패한 것은 중도층이 세월호 심판론을 비토한 것이니 이를 받아들인 것이란 뜻 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중도층이 심판한 것은 민주당의 무능과 교만, 복지부동은 아니었을까요. 무엇보다 야당의 추진력이 시급한 세월호 정국과 재보선 정국에서, 시민의 바램과 여론이 가장 수렴되어야 하는 공천에 그 깽판을 친 정당에 중도층이 진저리를 낸 것은 아니었을까요. 세월호 심판은 하고 싶지만, 너네가 더 사고칠 거 같아서 못 믿겠어란 ‘민주당을 향한 비토’ 말입니다.
정치적 지도자, 리더는 Lead를 하는 사람, 앞장서서 시민들을 이끄는 사람을 말합니다.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할 때는 귀 막고, 몰라몰라만 외치다가, 막상 앞장서서 이끌어야 할 때는 시민뒤에 숨어 겸허함을 뽐내는 이 정당의 ‘괴랄함’에 어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8. 공정성 편향

2014년 9월 22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편 되는 뉴스룸의 성공전략이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손석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첫째는 사실(팩트)을 다뤄야 한다는 것, 둘째는 가치관계에서 공정하게 즉, 이해관계에서 균형을 찾자는 것, 마지막 세 번째는 품위(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2번째입니다. (사실관계가 아닌) 가치관계에서 공정을 찾겠다.
얼핏 이 말은,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관계와 입장이 충분히 반영이 되도록 균형을 잡겠다라는 형평성을 강조하는 말로도 들리지만, 굳이 기계적 공정성(형평성)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도 읽힙니다. 미드 뉴스룸 버전으로 컨버팅 하면, ‘공정성에 편향’되지 않겠다는 말이죠. 언젠가부터 당연시 되어 온 기계적 형평성, 즉. 공정성의 원칙에 더 이상 함몰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공정성의 원칙(Fairness doctrine)이란, 언론은 사회적으로 중용한 쟁점을 다룰 때는 대립되는 여러 견해에 대해 각각 상당한 정도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균형을 잡을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얼핏 들으면 정론인듯한 이 원칙은, 사실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태생적인 흠결입니다. 공정성의 원칙은 1920년대 미국에서, 사회주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그에 대해 제동을 걸기 위해 계발된 개념이라는 의견이 유력합니다. 예컨대 1929년 좌익계열인 시카고 노동연맹이 홍보목적으로 라디오 방송국 매입하는 것을 무산시키거나, 또는 유명 극작가인 버나드 쇼가 CBS에 출연하여 한 것처럼 방송을 통해 공공연히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미국을 비판하는 발언 등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다는 것이죠.
공정성의 원칙이 확립된 것은 41년 메이플라워 사건을 둘러싼 FCC(미연방 방송통신위원회)의 유권해석 이후 입니다. 이 사건에서 FCC는,


'
방송사는 공공적 사안과 관련있는 모든 당사자들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그리고 편견없이 방송할 의무가 있다.'


는 결정을 내립니다.

1949년 미국판 방통위인 FCC는 방송사 재허가 심사요건에도 이 공정성의 원칙을 포함시킵니다. 하지만 언론의 균형의무인 이 공정성의 원칙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은 정치권입니다. 공정성의 원칙을 선거 등의 이해관계에 적용하여 언론이 기계적 형평성을 준수하도록 강요한 것입니다. 그 최대 수혜자 중 하나가 린드 존슨이죠. 1964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존슨은, 라이벌인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의 최대 우군 중 하나였던 보수성향의 라디오들에게 균형의무를 지킬 것을 강하게 압박하여, 그들의 영향력을 무력화 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 결과 존슨은 미국 대선 역사에서 손 꼽히는 일방적인 대승을 기록합니다.


둘째는, 공정성의 원칙이 가져오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입니다. 언론사의 균형의무가 방송사의 재허가 심사 조건이 되어버리자 언론사들이 스스로의 자기 검열에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논란이 되는 사안은 아예 보도를 피해버림으로써 면허박탈이나 소송 등의 위험부담에서 자유로워지자는 계산이었죠. 소위 말하는 언론의 위축효과가 생겨버린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신장 시킨다는 명분으로 계발된 공정성의 원칙이 도리어 표현의 자유를 위축해 버리는 역효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결국 FCC는 1987년 이 공정성의 원칙 조항을 공식적으로 폐지합니다.


언론보도의 균형보도, 기회균등이 과연 문답무용한 절대원칙인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100% 균형있는 보도라는 것은 허구입니다. 양측의 입장을, 문장부호와 글자 수까지 똑같이 맞춰 동등하게 보도한 들, 누구는 왜 내 입장이 뒤에 놓였냐며 따질 것이고, 누구는 왜 내 입장에 논조가 더 부정적이냐고 항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사 본연의 임무는 사회적 이슈를 이슈 그 자체로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로 하여금 사실을 말하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사실이 진실을 따라 해결책을 찾도록 조명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입니다. 기계적 공정성 뒤에 숨어서는 이슈가 사회적 유산으로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만 나열된 사실들 앞에서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진흙탕 같은 긴 혼란을 지나 진실이 밝혀진들 죽은 사실 앞에 현실은 무력하기 때문입니다.


손석희가 말한 것은, 공정성의 원칙을 폐기하겠다는 것입니다.



9. 여담. 다시 드라마

- 뉴스룸의 스토리 구조는, Studio 60 on the Sunset Strip의 그것을 빼 닮았습니다. 반목과 의기투합을 되풀이 하는 보스인 잭 vs.리오나의 존재와, 단짝인 맷과 데니 vs. 맥커보이와 찰리의 구도, 맥과 헤리엇. 데니와 조던의 러브라인 vs. 맥커보이와 맥켄지, 하퍼와 메기의 러브라인 또한 그렇습니다. 위기와 갈등의 원인과 대처방법도 유사합니다. 아. 이건 통속극?의 한계인가요? 아직 접하지 못한 분들에겐 시청을 권해봅니다.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고전 중인 마이클 스털버그를 첫 에피에서 발견할 수 있고, 사라 폴슨이나 아만다 피트의 찰진 연기가 입가에 웃음을 잡아줄 것입니다 : )


- 뉴스룸을 보면서 현실의 타임라인과 드라마 속의 타임라인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집니다. 이 둘의 타임라인은 상당히 엇물리며 나간다. 호라이즌 기름 유출 사고, 위헌 판결난 아리조나 이민법, 코크 인더스트리즈, 티파티, NSA 도청, 사린 가스 등은 모두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며, 시차도 근소합니다. 철저한 사전 조사 덕인지 혹은 재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엎치락 뒷치락 앞서나가는 가상과 현실세계의 사건. 사고는 매우 흥미롭다.


- 언급한 SDS(민주학생연합)의 지도자 중 하나인 톰 헤이든은 뉴스룸의 모기업인 ACM 리오나 회장역으로 나오는 제인 폰다의 실제 2번째 남편이었다.

"나도 알아. 그래서 언론사를 하나 샀잖아."


라고 호기롭게 말하는,ㄷㄷㄷ, 리오나(제인폰다)의 3번째 남편은 ACN을 연상시키는 CNN의 설립자 테드 터너입니다.


- 맥커보이가 SDS를 망친 주범으로 꼽은 제리 루빈은 Studio 60 on the Sunset Strip와도 인연이 있습니다. 그는 Studio 60의 실제모델인 SNL의 첫 시즌 2번째 에피소드에 출연해 ‘Make Love, Not War, Give Peace A Chance", "Hell, No, We Won't Go’등의 유명했던 슬로건을 패러디했었습니다. 이후 급진 좌파였던 제리 루빈은 평화 반전주의였던 히피(Hippie)의 지도자에서 반체제 과격단체인 이피(Yippie)의 설립자로 자리 바꿈한 뒤, 월 가에서 생을 마치는 드라마틱한 반전 인생여정을 걸으며, 도시에 거주하는 부유한 젊은 전문직 종사자를 뜻하는 여피(Yuppie)의 어원이 됩니다.


- ’웃음은 우리의 깃발’, ‘혁명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제리 루빈의 유명한 명언들 중에 하납니다. 그의 삶의 궤적과 이 말을 곱씹을 때마다, 유달리 ‘재미’에 목숨 걸던 지난 대선의 어떤 털보가 떠 오르는 것은 요상하기만 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 뉴스룸에서 맥커보이는 SDS(민주사회학생연합)과 티파티를 비교하면서, 68 혁명의 정점에 있었던 1960년대 말이었음에도 민주당에서는 제리 루빈이나 애비 호프만을 선출직 공무원으로 추대하지 않았고, 어떤 후보도 그들에게 지지를 구하지 않았지만, 현재 공화당은 급진 강경파가 되어버린 티파티 출신들을 공천하고 끊임없이 그들에게 구애를 한다고 비판합니다.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세습공천이라는 날선 비판에도 김용민에게 공천을 주는 것을 주저함이 없었고 세대갈등을 부추기던 나꼼수에게 d추파를 던지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 최대한 스포를 자제하자면, 뉴스룸 시즌 1과 달리 시즌 2는 맥커보이, 찰리, 맥켄지 vs. 리오나의 첨예한 갈등없이 달달한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그 개자식한테 단 한푼도 주지 않을거야!"

라고 외치는 리오나에게, 끈질기게 자신들의 사직을 받아줄 것을 요구하는 찰리의 논거는 언론사의 ‘신뢰’입니다.

"
우리의 오보 때문에 아무도 우리 뉴스를 믿지 않을거라고. 리오나. 우리는 물러나야 해!"


- 1년전 미드 속에서 윌 매커보이가 진행한 것은 ‘뉴스 나이’트 였고, 손석희가 진행한 것은 ‘뉴스 나인’(9)이었습니다. 곧 시즌 3이 시작할 그 미드의 제목은 뉴스룸이고, 손석희가 진행하는 방송도 이제 뉴스룸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습니다. 공교롭지만 의미심장한 이 우연에 더 많은 기대가 됩니다. 과연 드라마는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선거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전제는, 선출자가 유권자의 위임을 잘 이행하리라는 믿음이고, 시민이 언론의 의제 설정을 용인하는 전제는, 언론사와 시청자간의 신뢰입니다. 시즌 1. Epi. 3에서 뉴스룸 2.0을 선언하며 맥커보이는,

"우리가 누군데 이런 결정을 내리느냐고요?… 우리는 언론 엘리트입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힙니다. 한국 언론이 부끄러운 점은 엘리트만 있고, 신뢰는 없다는 점이 아닐까요. 햄버거로만 연명하다 결국 생을 달리했던 누구처럼, 시청률과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한국 언론은 결국 자멸할 것입니다.

화수분 같은 손석희의, 뉴스룸의 ‘단물’을 기대합니다.



쪼가리.

작년 이맘때 더딴지에 기고한 글을 조금 손봐서 다시 내어 놓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