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글모음/아기곰님 글모음

8학군과 강남 집값(2003/05/05)

크레도스 2011. 10. 25. 15:31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많습니다.
거시적인 경제 동향이나 금리 또는 정부 정책등 외적 요인도 있을수 있고, 그 지역이 갖는 교육 환경, 교통 편이성, 조망권을 포함한 자연 환경등 내적 요인도 있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교육 환경과 그 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다른 글 쓸때 보다도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하나는 부동산 자체 이야기 보다는 교육이라는 다른 분야도 다루어야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육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교육에 대한 상당한 철학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각자의 주관이 다른 만큼 이 글에 대한 평가는 양분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매해 수능 시험이 끝나면 그 결과에 따라 강남 등 소위 학군이 좋다는 지역의 집 값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부의 세습에 의해서나 태생적으로 신분 상속이 되는 서양에 비해서 8세기 신라의 독서삼품과에서 시작하여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천년 이상의 ‘과거 제도’라는 문민의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이 교육에 쏟는 정성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장원 급제하여 사랑하는 아내를 포악무도한 변사또로부터 구해내는 춘향전은 대표적인 ‘인생역전’이야기입니다.
부의 축적을 통한 신분 상승 보다는 입신양명이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는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러한 천여년의 전통은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문화 민족, 교육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은 가져도 좋을 법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이것은 수치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에 누가 수석으로 들어 갔다는 등 현대판 장원급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통계 자료가 많습니다.
제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인종별 점수 분포도입니다.
일반적으로 백인의 평균 점수가 60점이라 할때, 중국인과 한국인이 주류를 이루는 동양계의 평균 점수가 65점 정도 되고, 남미계인 히스패닉은 45점, 흑인계는 40점 정도의 점수 분포를 나타냅니다.
물론 모든 시험은 영어로 보는 것입니다.
히스패닉이나 흑인에 비해 인종적 우월감을 맛보려던 백인들의 자존심은 동양인 앞에서는 꺽기고 맙니다.
백인들은 이렇게 이야기 하죠.
“너희처럼 공부하면 우리도 점수 더 높게 딸수 있어.”
그러면 동양인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누가 공부하지 말래? 공부하지 말라고 했냐고~요?”
(이때 코메디언 정부미씨의 제스추어를 사용하면 더 통쾌해집니다. ^^)
그 학교에 동양인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학교 평균 성적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실은 동양인이 적으면서도 점수가 높은 학교가 진짜 잘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어떤분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점수만 가지고 교육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전인(全人) 교육이 중요한 것 아니냐?”
그러나 점수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평가할수 있는 부분만을 평가하는 것이며, 전인 교육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점수가 높다고 전인 교육이 안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전형적인 이분법 논리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리겠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교육 시스템 하나는 잘되어 있는 곳입니다.
학생 일인당 연간 예산이 $6,000 우리나라 돈으로 7~8백만원이나 됩니다.
나름대로 전인교육에 쏟는 정성도 대단하고요.
개구장이 아이에게도 씩씩하다는 명목으로 상을 주는 나라입니다.
잘 웃는 아이들에게는 학급의 분위기를 활기차게 한다고 상을 주고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도 시험은 시험이고, 점수는 점수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매해 주(State) 단위의 대대적인 시험을 몇일간에 걸쳐서 치룹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부모에게 우편으로 개인별로 통보해줍니다.
과목별로 전국에서의 자신의 위치, 주(state)안에서의 자신의 위치, 카운티 (county)에서의 자신의 위치등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그러면 어떤 과목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는지를 알게되기 때문에 그에 맞는 노력을 더 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인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아무런 평가를 하고 있지 않다가 고3때에 가서나 자신의 현실을 깨달게 하는 것이 인간적인지, 아니면 어려서 부터 자기의 장단점을 알게하는 것이 인간적인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학교별로도 점수가 공개되고, 성적 향상이 많이 되거나 점수가 높은 학교에는 특별 예산을 더 주기때문에 학교 선생님들도 국가가 정해준 수준 이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열심입니다.
부동산이나 재테크와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이 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하는 것은 앞으로 설명하려는 것에 대한 오해를 줄이려고 함입니다.
교육 전반이 아니라 ‘점수’에 대해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립의 경우 지역을 기준으로 학생을 배정하고 있습니다.
(사립은 지역에 대해서 자유로우나 한국의 사립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학비가 한국의 대학 수준이고 공립은 무료라 보시면 됩니다.)
지역 기준으로 학교를 배정하기 때문에 좋은 학교에 들어 가려면 좋은 학군이 속한 지역에 살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길하나 사이로 집값이 두 배 가까이 차이 나는 지역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싼 곳에 살면서 학군 좋은 곳에 위장 전입하는 경우가 가끔은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입학하려면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증거 (주소가 나와 있는 전기요금 또는 가스 요금 영수증 등)를 2개 이상 제출해야 하며, 학교에서 가끔 통지문을 우편으로 발송하는데,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는 경우는 바로 퇴학 조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역에 친척이 살고 있어서 완벽한 거짓말을 도와주는 경우 이외에는 일반인에게 위장전입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좋은 학군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정부에서 특정 지역을 차별화하려고 좋은 학군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교육에 투자가 많은 부자 동네가 학군이 좋게 되며, 이에 따라 경제력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동네의 집값이 더욱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많은 동네는 학교에 기부도 많이 하기 때문에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대해 정부나 거기 살고 있는 주민에 대해 욕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없거나 다 키운 사람은 길 건너 싼 지역에 살면서 그 돈으로 좋은 차를 끌고 다니면 되니까요.)

"교육 환경이 잘 갖추어진 도시가 집값이 비싼 도시가 되느냐?
반대로 집값이 비싼 도시가 교육열이 높은가?"라는 논쟁은 “닭이 먼저 인가 달걀이 먼저 인가?”와 같은 주제입니다.
그러나 인정하기는 싫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가 점수 분포도가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쓸데 없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서울 명문대의 수시 합격에서 8학군이 몇%를 차지하는지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집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미국에서도 여유 있는 가정에서의 교육열은 무척 높습니다.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시 부모 둘 모두가 참석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이들이 주말에 축구라도 하면 아버지는 운동장까지 차를 태워줄 뿐 아니라 그 경기가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아이들을 지켜봅니다.
또한 미국에도 과외는 있습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같은 모양입니다.)
미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분은 동아일보 김순덕 기자가 쓴 “김순덕의 뉴욕 일기”라는 책을 읽어 보십시오.
그 안에 두 Chapter에 걸쳐서 교육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의 두 도시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구시가지가 많고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LA와 남쪽으로 60Km 거리에 있는 한 신도시를 비교하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LA는 정부 보조를 받는 서민층이 59%이고 이 신도시는 6%입니다.
그런데 두 도시 학생의 평균 성적을 비교해 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6%, 고등학교는 5% 정도 이 신도시 학생들이 높습니다.
두 도시의 평균 집값은 LA가 27만 달러, 이 신도시가 37만 달러입니다.
이 신도시의 경우는 교육 환경이 좋으니 집값이 오르고 (지난 1년간 22% 상승), 집값이 비싸니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만 살게 되고, 이들의 교육열이 상대적으로 높으니 학생들의 점수가 높은 상승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학군은 8학군이죠.
아시다시피 70년대 중반 서울 도심의 집중화를 해소하고, 강남 개발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하여 경기고, 휘문고, 숙명여고등 수십년의 역사를 가진 소위 명문고들을 강남으로 반강제로 이전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중산층의 강남 이전 및 정착에는 성공을 하였으나 그후 자생력을 갖춘 강남은 학군이라는 무기로 여유있는 계층의 강남 이전을 부추기고, 위의 미국의 예 처럼 ‘집값과 교육 토양’이라는 상호 상승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교육을 부동산 정책에 이용한 정부가 반대로 교육열 때문에 부동산 정책이 영향을 받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공교육 뿐만 아니라 미국과 달리 사교육이 발달한 한국만의 특성도 무시할수 없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입시에 대한 의존도가 학교 보다도 학원에 더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원은 학교와 달리 100% 민간 사업이기 때문에 소위 돈이 되는 곳에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즉, 교육열이 높고 학원 수요가 높은 곳에 학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점점 사교육의 비중이 높아가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학군도 중요하지만 좋은 학원이 얼마나 몰려 있는가도 높은 집값 형성에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치동에는 400여개의 학원이 몰려 있고 자신만의 노하우 없이는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에 학원들의 교육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합니다.
이것도 또 하나의 시장 경제입니다.

만약 정부에서 공권력을 발휘하여 강남에 있는 학원들을 강제로 지방으로 이전시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학원들은 강남에 남으려고 있는 연줄 없는 연줄 다 동원해서 로비에 집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살아 남은 학원에는 무지막지한 권리금이 붙을테고, 지방으로 이전 명령을 받은 학원들은 잠시후 폐업 신청을 내고, 강남에 살아남은 학원의 하청(?) 학원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경쟁자를 하청자로 모는 시장 왜곡 현상을 부를 것입니다.
학원하시는 분들에게 ‘교육은 백년지 대계’니 봉사하는 정신으로 학생을 가르치십시오라고 설득할수는 없습니다.
학원은 공교육도 아니고 명백한 사업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교육 환경이 좋은 곳이 강남 뿐일까요?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노원구중계동, 양천구 목동등도 좋은 환경을 갖춘 곳이며, 분당, 평촌등 신도시도 마찬가지로 좋은 곳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방 도시도 좋은 학교 주변에 높은 집값이 형성되고 그 것이 교육 토양을 만들고, 소문이 나고, 유인 효과가 되고, 집값이 다시 오르는 순환을 그리는 곳이 있는 것입니다.
지방 도시중에서도 학군이 좋은 곳이 다른 곳 보다 집값이 높은 현상을 보이고 있다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강남을 제외하고는 자생력은 없는 상태입니다.
분당의 예에서도 보듯이 신흥 명문 서현고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분당 집값이 근거리 배정 원칙이 깨지자 흔들리고, 이윽고 강남 회귀라는 현상을 가져와 강남 집값을 자극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서현고 신화를 깨트리듯이 강남 8학군을 없애면 어떨까요?
서울을 하나의 학군으로 보고 추첨하여 학생을 배정하거나 고교 입학 시험을 부활하여 원하는 학교로 진학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동선의 확대 – 즉, 은평구에 사는 학생의 경우 두 시간에 걸쳐서 등교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학원이 끝나는 자정 무렵 부모님이 학원 앞에 기다렸다 집으로 모셔(?)오는 사태도 벌어질것이고요.
이것도 몇달간 하다가 원룸등을 얻어 자취하는 학생이 늘것이고, 그러다 온 가족이 강남으로 이전할 것입니다.
그러면 또 전세값이 오른다고 언론에서는 난리를 칠것입니다.
고교 배정이 고르게 되니까, 강남으로 이사해 오는 가구 만큼 강남에서 강남 밖으로 이사해 나가는 가구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소위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이것은 학원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학군을 흐트러 놓아도 강남의 교육 환경이 분당이나 지방도시와 같이 변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떠한 강제력으로 강남의 학원, 8학군의 학교를 지방 중소 도시로 강제 이주시킨다 하더라도 강남 지역 학군은 몇 년 만에 놀라운 복원력을 보일 것입니다.
교육 토양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강남의 경우, 교육환경이 집값 상승에 큰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교육 환경을 제거한다고 해서 강남 집값이 크게 타격을 받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거의 유일하게 교육 환경의 인프라가 타 지역보다 경쟁력 있어 보이는 강남이 높은 집값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강남이라는 땅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모든 수요를 만족시킬수 없다는 것과 강남 집중화는 사회적으로도 좋은 현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을 충족하고 강남 집중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신도시나 지방 주요 도시마다 보다 나은 교육 환경을 갖추게 하여, 수요를 분산하는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즉 강남의 8학군이 아니라, 전주의 8학군, 울산의 8학군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지방의 인재들을 모으고 키울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분당 서현고 처럼 자라는 싹을 잘라서는 안됩니다.

교육열 자체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닙니다.
교육에 대한 무한한 열정은 어찌보면 우리나라가 갖고 있고 가질수 있는 유일한 자산일수도 있습니다.
교육열을 더 이상 규제해서는 안됩니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우리 자녀끼리 우열을 매기자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과 당당히 겨루어 우리에게 부를 가져다 줄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경쟁자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들이 아니라 선진국의 좋은 환경에서 교육 받고 있는 제 또래라는 것을 우리 어른들부터 인식하여야 합니다.
비록 과열된 교육열이 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 또는 이기심의 발로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국가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은 새 정부의 몫입니다.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은 흐르는 물을 막는것이 아니라 그 물이 필요한 곳으로 제대로 흘러 들어가도록 물길을 터주는것입니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