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글모음/김현정님 글모음

한국30년. (환경)(2012년 1월 25일)

크레도스 2012. 1. 30. 15:55

오랫만에 뵙네요.
3개월간 쓴 글 약속대로 여기에 또 게시합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니, 글이 마음에 안드시더라도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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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에 보면
“不可勝者 守也 可勝者 攻也 (불가승자수야, 가승자 공야)” 라는 말이 나오죠.

자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이길 수 없다면 지켜야 하고, 이길 수 있을 때만 공격을 감행해라.” 라는 이야기랍니다. 하지만, 이 해석이란 이 문장에서 한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만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고, 이 글에 대한 속내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모든 분들께서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을 하실 수 있다 여겨지네요.

저는 이 손자병법에 나오는 ‘不可勝者 守也 可勝者 攻也 (불가승자수야, 가승자 공야)’에 대한 해석을 이리한답니다.
“강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자 앞에서는 강해지라.”는 이야기로 말이죠.

비겁해 보이시나요?
‘용기’있는 것과 ‘비겁’한 것의 차이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책에서는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나 현실세상은 이와 좀 다르답니다.

내 쉽게 한가지 예를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옛날 이야기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네요.

옛날 조선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23번 왜군과 싸워 23번 모두 이긴 것은 이순신 장군이 무슨 절대 죽지 않는 불사신이라서가 아니라, 질 싸움은 아예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이것을 가지고도 왜군을 상대로 “비겁하다.” 하실 요량 이신가요? 이순신장군이 왜 바다에서의 전투인 수군에서만 싸움을 하고, 육지에서는 싸우지 않았는지는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셨는가요?

자, 계란이 바위를 보고, “너와 내가 누가 강한지 자웅을 겨루자.”라 하며, 계란이 바위에서 덤비는 것은 용기일까요? 아니면 무모한 짓일까요?

진정한 용기라는 것은, 자신보다 상대의 힘이 강하건 약하건 따지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무작정 힘의 자웅을 겨루자 덤비는 것이 아니랍니다. 이는 그냥 ‘무모함’이라 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죠. 진정한 용기라는 것은;

자신에게 유리한 때를 기다리면서, 모든 주변의 상황을 유리한 조건으로 만들어가며, 스스로의 약점과 장점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이를 극대화 시켰기는 것을 이야기하고 바로 이순신장군은 이것을 잘 이용하고 알았기에 이긴 것뿐이랍니다. 왜놈들이 이순신 장군에게 먼바다에 나와서 당당히 싸우지 않고 전술과 술수를 통하여 전쟁을 이겨서 비겁하다 할지 모르지만, 아무런 전략이나 전술이 없이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강점이나 약점을 가가진 것 모른 체, 언제 어디서 누구와 결투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중세 유럽에서 이른바 귀족이라는 사람들이 여자를 두고 벌인 결투밖에는 없답니다.

이 결투에서 누가 이길까요?
아무도 모르죠?
싸워봐야 아는 것이죠.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아는 자가 이기는 것. 계란 가지고 바위를 깨겠다고 덤비는 미련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답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미리 피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랍니다. 남들이 비겁자라고 비아냥거리거나 욕을 해도 이를 감내하고, 고개를 숙이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은, 오히려 ‘비겁’이라기 보다는 ‘용기’에 가깝죠.

이순신 장군 이야기 좀더 해볼까요?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과 ‘명랑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후에, 조정으로부터 한 통의 전갈을 받게 된답니다.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바다를 건너 부산으로 들어온다는 전갈이었죠. 그래서 조정은 이순신에게 왜장 가토를 잡아오라 명을 내렸는데, 이순신 장군은 선조의 명을 따르지 않았죠.

이순신장군 입장에서는, 첩보가 왜군에게서 나왔을 뿐 아니라, 안골포를 비롯한 경상도 해안 곳곳에 웅거하는 왜군 수군이 있을텐데, 그곳은 전라도의 지리에만 밝은 이순신으로써는, 지리를 모르는 경상도 앞바다에 갔다가 자칫 왜군에게 포위되거나 사로잡힐 것이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요.

나는 알되 남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전략과 전술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제 아무리 바다의 영웅 이순신이라고 해도,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닌 바에야 싸울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고요. 하지만, 첩보는 사실이었고 가토는 무사히 부산에 도착을 했죠. 이에 선조가 불을 내며 성노하고,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한 후에 백의종군을 시키기에 이르죠.

그 이후에 원균이 이순신의 후임으로 오지만, 원균도 한 나라에 수군의 장군인데 이순신이 고민하던 것을 똑같이 고민을 안 했을까요? 또다시 부산에 왜군이 건너온다는 소식에 맞서 싸우라 조정에서 명이 내려왔지만, 이순신과 똑같이 또 고민만하다가 도원수 권율이 한산도까지 직접 찾아와 군율을 세운다며 수군 총 사령관인 원균에게 곤장을 때리고 강제로 출정을 하게 하죠.

결과는 어떠했나요?

원균이 이끄는 수군이 출정은 했지만, 칠천량에서 조선수군이 왜군에 전멸을 당했답니다.

자 왜 갑자기 ‘손자병법’을 이야기 하면서, 또한 이순신 이야기를 제가 꺼냈을까요?

그간 ‘보이지 않는 힘’을 전부 보신 분도 있겠지만, ‘마지막 이야기’에서 이야기했듯, 내년 12월 24일을 기점으로 보험기간은 만료가 된답니다. 미 정부가 ‘프레디맥’과 ‘페니메이’에 대한 보증을 2012년 12월 24일까지 보증해 준다 했으니까요.

많은 언론에서 이야기 한답니다. 지금은 ‘반복’이 아니라고요. 제가 볼 때는 이도 ‘반복’입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제가 2년 전에 이야기 한 것이 바로, “중요한 것은 역사는 ‘반복’ 된 경기불황의 그늘을 항상 ‘전쟁’이나 그에 버금가는 ‘경제불황’을 제물로 삼고 이를 극복해 왔답니다. 이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었으니까요.” 라고 제가 썼네요.

‘세상은 변화하는 것은 없다. 항상 반복되고, 그 속도만이 빨라졌을 뿐이다.’라고도 분명 이야기 했죠.

이제 향후 30년간 그리고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쓰려고 한답니다.

아마 한가지의 주제로 가장 길게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미국의 상황’과 ‘세계무대에서 지위가 높아져가는 중국의 태도’, 그리고 우리의 옆 나라인 일본이 어찌 변해가고 있고, 노후를 어찌 준비하며, 젊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봐야 한답니다. 1인가구수가 늘어나고, 초고속화되는 노령화와, 이른바 신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초식남’이라 불리우는, 결혼을 안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자녀들에게 부모로써 무엇을 준비해 주어야하는지와 지금 제 글을 읽고 계신분들이 노후를 맞이하는 30년 후의 모습과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일반 책 한두권 정도의 글 만으로는 모자름이 있을수 있으니까요.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야기 한가지 더 할까요?

우리가 잘아는 ‘知彼知己 百戰百勝’ 이라는 이야기가 있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싸워서 백번이긴다.’라는 이야기랍니다. 하지만 원문에는 달리 써있죠. ‘知彼知己 白戰不殆지피지기 백전불태’가 맞는 이야기랍니다. ‘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라는 것이죠.

적을 알고 나를 알아도 주변의 상황과 인맥에 따라서 변수는 많답니다. 세상에 나보다 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남을 안다고만 해서 꼭 이길 수 있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이론이죠.

실상은, 남들과 싸워서 이긴다기보다는 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바로 손자병법이 이야기 하는 내용이랍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 내 것을 만든다기 보다, 내 것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 생각이 드네요. 즉, 최종적으로 우리가 알아야 하고, 자녀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마지막 단계는 ‘싸워서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라 이야기하고 싶네요.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하려 한답니다.

나중에 자녀들도 읽으면서 삶의 방향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법’도 같이 이야기에 넣을 생각이랍니다. 중고등학생이면 같이 읽으셔도 좋을 듯 하네요.

처음에는 쉽게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우리사회에 대한 주변이야기부터 하렵니다. 긴 글이니 이 글이 끝날 때쯤 되면 아마도 2012년의 겨울이 될 듯 하네요.

또 한번의 반복적인 ‘큰 변화’가 오래 남지는 않은 듯 보여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