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기타

통섭형인재

크레도스 2013. 3. 14. 15:07

◆통섭(統攝·Consilience) = '큰 줄기를 잡다. 모든 것을 다스린다. 총괄하여 관할하다'라는 뜻이다. 학문에선 '지식의 통합' 개념으로 특히 서구 르네상스 시대 이후 거리감이 있던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려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최근에는 학문 세계 뿐 아니라 산업현장과 일상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가치 있는 것들을 결합해 새롭고 창조적인 것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흔히 쓰인다. 단순히 지식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섞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몇 년 전에 『통섭(Consilience)』이라는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다. 통섭이라는 말 자체는 이미 성리학과 불교에서 “큰 줄기를 잡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이 쓴 해당 서적으로 인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연결한다는 현재의 의미를 가지면서 통섭 신드롬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통섭의 의미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연결에만 국한되지 않고 “학문 섭렵에 편식이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특히 예술과 경영, 예술과 IT를 접목한 애플의 아이폰이 개리 해멀 교수가 제시한 업계구조혁신을 현실화시키면서 통섭의 지혜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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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카리나'는 애플의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이하 앱) 장터 '앱 스토어'에 등록된 음악 관련 앱 중 가장 많은 300만 번의 내려받기 횟수를 자랑한다. 실제 오카리나(도자기 재질의 입으로 부는 악기)를 연주하듯 아이폰 마이크에 숨을 불어넣어 화면의 가상 공기구멍을 조작하면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앱을 만든 이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 컴퓨터음악·음향학연구소장인 거 왕(32) 교수다.

  이를 포함해 그가 만든 앱 8종은 앱스토어에서만 700만 달러(78억원)를 벌어 들였다. 애플 신제품 출시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 앱 개발자이자 세계 최초의 랩톱(노트북) 오케스트라, 모바일 오케스트라의 창안자이기도 하다.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 음악대 교수, 교육자이자 벤처 창업가, 프로그래머 겸 기타리스트인 왕 교수는 '통섭형 인재'의 전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왕 교수처럼 다방면의 재주로 경계를 허무는 이들이 곳곳에 존재하지 않을까. 각 분야 전문가들이 추천한 이른바 '통섭형 인재' 7명을 심층 인터뷰해 그들의 공통 분모를 헤아려 봤다.

 

#반도체 업체가 인류학자 둔 까닭

 통섭은 세계 학계·산업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다.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융합해 여태껏 볼 수 없던 창조적 결과물을 내놓는 일이다. 황창규 국가 R&D(연구개발) 전략기획단장은 "스마트 혁명으로 세계 산업계가 전례 없는 변곡점을 맞은 이 때, 통섭형 인재는 기업과 사회에 가장 절실한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크리스텐센 교수의 말처럼 "정보기술(IT)이 득세한 뒤에는 융·복합 기술이 답"이며 "애플의 혁신 제품들은 통섭형 R&D의 전범"이라는 것이다.

 실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지난 1월 태블릿 PC인 아이패드 출시 발표장에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애플이 있다. 세계 유수의 IT 업체들이 기술을 앞세워 경쟁하지만 이를 압도할 힘은 인문학에서 나온다"고 역설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이 미국 본사에 인류학자가 이끄는 상호 작용·경험 연구소를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디자인의 심장'으로 불리는 미국 디자인 업체 아이디오(IDIO) 사무실엔 명문대 MBA(경영학 석사) 출신은 물론 다양한 분야 예술가와 군인 출신, 언어학자, 역사학자, 골동품 자동차 마니아가 북적거린다. '통섭' 개념을 국내에 도입해 전파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통섭 능력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균 수명이 80대 이상을 바라보는 고령화 시대에 한가지 일밖에 할 수 없다는 건 불행이기 때문이다.

 

#통섭 인재 공통점은 '꿈·재미·실행력'

  통섭형 인재를 기르고 잘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박학다식이 곧 통섭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가이자 콘텐트 융합 전문가인 김탁환씨는 "10대, 20대 연령 때 다양한 융합 시도가 놀라운 성과로 이어지는 경험을 자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학점·학벌 위주의 교육이 득세한 우리나라에선 통섭 재능을 지닌 이들이 외려 쓴맛을 더 볼 수도 있다. 골고루 잘 해야 하는 대학 입시 관문이 쉽지 않다. 추천 받은 7인을 개별적으로 장시간 인터뷰한 결과 여러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자신의 재능과 흥미 대상을 일찌감치 발견해 10대에 이미 특정 분야에서 준전문가급의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의사· 프로그래머이자 작가인 관동대 정지훈(의학) 교수는 열두 살 때 동네 백화점에서 본 애플2 컴퓨터에 빠져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의 신훈 부장은 고교 시절부터 아마추어 만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이들은 전공을 택할 때도 '재미'를 우선했다. 대학 생활 중엔 선후배와 은사는 물론 사회 각계 '선수'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변화에 적응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키웠다. 새로운 게 나오면 일단 덤벼들고 봤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이성식 디자인 그룹 파트장은 "영상 제작이든 그래픽 디자인이든 참신하다 싶으면 독학을 해서라도 즉각 현장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통념을 거스르는 것은 모두의 전매 특허, 포스코의 김지용 소재 사업실장은 "포스코가 처음으로 박사 출신 공장장을 구한다기에 미국의 꽤 안정적인 일을 뒤로 하고 귀국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