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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법무부 감찰, 그 속내는?

크레도스 2013. 9. 27. 18:06

알기쉽게 잘 쓴 글이라 퍼옵니다~

 

식당 주인 이몽룡 씨는 주방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꾸 참견을 해댑니다. 생선을 자르던 칼로 귤을 깎으라하고, 뎅강 썰어야 하는 갈비를 회칼로 만들라 하고, 돼지고기를 다듬던 도마에서 채소를 다듬으라는 식입니다. 요리사들 불만은 하늘을 찔렀지만, 주방장은 조용히 시키는대로 합니다. 음식이야 어찌 되든 말든.

손님들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과일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갈비는 뼈가 안 썰렸고, 채소에 돼지비계 범벅이라고. 호통을 치는 손님들 앞에 지배인이 나섭니다. "흠.. 조리법대로 만들었습니다. 뭐가 문제인가요?" 회의를 느낀 몇몇 요리사가 식당을 관뒀고, 주방에선 결국 싸움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주방장이 쫓겨났지요. 얼마 있다가 식당 주인도 바뀌었습니다.

얼마 후 새로운 식당 주인과 주방장이 왔습니다. 새 주인은 공언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주방 일에 참견하지 않겠다." 새 주방장도 약속했지요. "이제부터는 정석대로 요리하겠다." 그리고는 회칼로 회를 뜨고, 큰 칼로는 뼈를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방에선 다시 음식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음식 맛도 제법 좋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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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과장해서 설명한 검찰의 지난 모습입니다. 지난 정부 내내 우리는 <뎅강뎅강 썰어야 할> 사건을 살점만 찔끔찔끔 건드리고, <손으로 까도 될법한> 사건에는 회칼을 들이미는 해괴한 광경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훌륭한 식당이 되려면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하건만.. 사실 손님들의 바람은 간명합니다. <맛 좋은 음식을 제값 내고 먹는 것>. 식당 주인과 주방장은 그걸 위해 각자 노력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대통령과 각 기관의 장들에게 원하는 것들도 마찬가지겠지요.

<대한민국과 북한의 차이>

북한은 독재국가고 우리는 민주국가입니다. 우리 헌법은 <3권분립>을 규정하고 있죠. 국가 권력을 셋으로 쪼개 놓았다는 뜻입니다. 법을 만드는 국회와(입법부), 그 법을 가지고 살림을 꾸리는 정부(행정부), 그리고 법을 잣대로 재판을 하는 법원(사법부). 이렇게 말입니다. 권력은 분산해야만 독재의 전횡을 막을 수 있고, 그래야 국민들의 자유가 보장되니까요. 3권의 분립은 민주국가를 위한 뼈대입니다. 우리나라가 북한처럼 되지 않으려면, <국회>와 <정부>와 <법원>을 엄격히 구분해 건강한 견제를 하게 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사법부>가 독립 하는데는 <검찰>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사법부 권한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수사해서 재판에 넘기는 권한>과 <재판해서 벌을 주는 권한>. 전자는 검찰이, 후자는 법원이 가지고 있죠. 검찰은 범죄를 수사하고, 죄인가를 판단하고(기소권), 재판 진행의 한 축을(공소유지) 담당합니다. 검찰은 행정부(정부) 소속이지만, 하는 일이 사법부에 속해 있어 <준사법부>라고도 부릅니다. 그래서 검찰만은 행정부로부터 일정 부분 독립을 시켜놓았습니다. 대통령이나 고위 관료들이 함부로 검찰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려고요. 검사가 수사 중인 사건을 법무부 장관이 지휘할 수 없게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법부인 법원은 국민들의 생명, 신체, 재산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습니다. 준사법부인 검찰은, 수사를 위해 사람을 가두고, 물건을 압수하고,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요.(이 권한이 적절한가는 나중에 따로 논의 하십시다) 이 권한이 워낙에 막강하다보니 남용을 막는데 특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다른 권력기관들로부터 검찰과 법원을 반드시 독립시켜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위험한 칼, 법무부 감찰은 최후의 카드>

이런 이유 때문에. 검찰에 대한 행정부의(법무부) 감찰은 <최후의 통제장치>여야 합니다. 이게 남용되면 자칫 정부가 검찰을 쥐고 흔드는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3권분립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어느 한 조직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 정도가 아닙니다. 법무부의 감찰 카드는 위험하고 커다란 칼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막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생긴 이래, 한 번도 법무부가 검찰총장을 감찰한 일이 없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 전례가 없으니까 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여서 지금껏 전례가 없는> 겁니다. 차이가 이해 되시죠?

따라서 법무부가 검찰총장을 감찰할 작정이라면 미리 이런 점들을 반드시 따져야 합니다. 사건의 특성이 어떤지, 감찰의 실효성은 있는지, 파급효과는 어떤지 등을요. 그런 후에는 국민들을 상대로 내용을 자세히 풀어 설명해야 합니다. 왜 감찰을 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반드시 자유를 보장받아야만 하는 모든 국민은, 정부로부터 이 같은 내용을 듣고 판단할 권리가 있습니다.

<검찰권을 심각하게 남용하는 일인가?>

이번 사건을 한 번 따져봅시다. 검찰의 수장이 혼외자식을 몰래 두고 지내온 것이 사실이라면 일단 도덕적으로 큰 문제입니다. <혼외 가정이 공직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굳이 이 내용을 논의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채동욱 총장이 사실 무근이라 주장하며 소송까지 냈으니까요. 만약 뻔뻔한 거짓말로 검찰 조직과 국민을 농락하고 재판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진실을 감추려 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겠죠.(혼외자가 사실이라면) 그러니 혼외자가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최후의 카드? 실효성은 있는가?>

그럼 혼외자를 확인하는 방법은요? 딱 하나. <유전자 검사> 뿐입니다. 사람들의 주장은 단지 <정황>일 뿐 <사실> 확인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유전자가 일치하면 아들인 거고, 아니면 아닌 겁니다. 문제는, 유전자 검사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아이의 인권 문제이기도 하고, 아이가 미국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유전자 감정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임씨 가족의 협조를 얻는 것 뿐 입니다. 사실 지금 가장 속이 타는 사람은 채동욱 총장일 텐데, 채 총장이 하겠다고 나섰으니 검사를 진짜 받는지 상황을 조금 지켜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법무부는 감찰 이유를 진상을 <조속히> 밝히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조속히 밝힐 거냐는 질문에는 답을 못 합니다. 왜냐? 그럴 방법이 없거든요. 법무부 감찰관은 검찰총장을 조사할 수는 있지만(그것도 본인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일반인을 조사할 수는 없습니다. 유전자 검사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얘깁니다. 채 총장이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거나, 검사를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이라면 법무부의 감찰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채 총장이 소송까지 내고 유전자 검사를 받겠다고 한 지 하루 만에 감찰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충분히 고민하고, 충분히 설명했나?>

법무부와 청와대는 감찰 지시가 황교안 장관의 결정이라고 했지요? 이 날 법무부 감찰관은 해외 출장 중이었습니다. 어떻게 감찰할 건지 대책도 없고, 감찰관도 없는데 3권분립을 뒤흔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일을 장관 혼자서 결정했다는 거죠. 사실이라면, 황 장관은 크게 혼이 나야 정상입니다. 정부가 준사법 기관을 쥐고 흔든다는 비난을 받을 게 뻔 한데, 장관이 경솔하게 발표했다고요? 진짜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황 장관을 불러 격노해야 맞습니다. 청와대가 법과 원칙을 중시하고, <민주국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청와대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이정현 수석은 <이건 검찰의 독립성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더니, 며칠 뒤 박 대통령은 <법무부 감찰이 시의 적절했다>고 말했죠. 만약 이게 진심이라면 민주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도 없을 만큼 무식하다는 말이고, 거짓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국민을 호도할 만큼 뻔뻔하다는 말입니다.

<모르고 했을까? 알면서 한 걸까?>

검찰, 법무부,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황교안 장관의 독자 결정>이란 말을 믿지 않습니다. 청와대가 황 장관에게 <감찰을 지시한> 것인지, 청와대가 황 장관의 <감찰 아이디어를 승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법무부와 청와대 사이에 교감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청와대가 알면서 그리했다면. 민주국가에 대한 고민이 없거나, 민주국가를 만들 의지가 없거나, 민주국가를 원하지 않는 거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권력을 나누고, 서로를 견제하도록 하는 게 민주국가의 원칙 아니던가요. 건국 이래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이렇게 대뜸 일어난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심각하게 되새겨 볼 일입니다. 굳이 김학의 선생과 윤창중 선생의 사례를 언급해가며 비교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검찰총장은 행정부 공무원 아니야? 도대체 왜 감찰을 못 받겠다는 거야?>

글을 작성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민주국가가 운영되는 원리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저런 질문은 할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은 절대로 <공직자의 황당한 추문>이나 <검찰의 문란한 성생활> 정도로 치부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가 불순한 의도로 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을 망가뜨리려는 시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권한이 비대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법원과 검찰이 한치의 부끄럼 없이 공정하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이건 우리의 헌법 정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안이 더 복잡해지는 통에,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콕 집어 말하지 못할 뿐, 이런 상황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 느끼고 있습니다. 그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누려왔던 자유와 권리가, 이리도 귀하고 소중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채 총장 사건이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는 <독>이 아닌, 사회를 키우는 <약>이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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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기자yohani@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