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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미래의 자화상이다_여섯번째

크레도스 2011. 7. 12. 17:09

제목 현재는 미래의 자화상이다_여섯번째
글쓴이 김현정(elly0526) 조회수 11,272 추천수 59 등록일 2008/06/27

나이 먹어 늦게나마 그래도 무엇을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요즘에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작은 제가 했어도, 주변의 도움이 없이 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군요.
물질적인 것도 그러거니와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이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닌 그 누군가의 도움이 있기에 참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가는 듯 합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요구사항이 다양하신데, 저도 그저 지금 글을 읽고 계시는 분과 마찬가지로 그냥 평범한 사람이기에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네요.
그저 여기에 살아가면서 느낀 것을 끄적거리며, 마치 일기를 쓰듯이 제 생각을 공유하는 것 뿐이니 제가 여러분보다 나은 그 무엇이 있다는 생각을 안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평범한 아줌마이고 할머니이기에 매일 같이 책을 보고 세상을 공부하며 주변의 것에서 많은 것을 하루하루 배우고 있는 사람일 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학자나 시대를 대변하여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철학자도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이 쓴 글과 같이 그냥 평범하게 대하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어디 지역이 돈이 되고, 무슨 주식을 사면 오르고, 장사는 무엇이 괜찮고 하는 것은 모두 본인들의 주변환경에 맞게 자신이 선택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잘 모른답니다.
그러기에 뭉뚱그려서 제가 매번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지요. ^^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리고 손주가 어여쁜 평범한 할머니일 뿐이랍니다. 저는 이렇게 글을 쓸수 있는 시간과 힘이 아직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게 하루 하루를 산답니다.

지난번 제가 올린 글 뒤에 어느 분께서 ‘내재가치’에 대한 물음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잠시 그것에 대한 제 개인적인 의견을 좀 말해보지요.

그분의 말씀을 잠시 빌려오면, “ 재화의 가격은 내재가치(사용가치)와 미래에 대한 기대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잠시 투기적 수요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내재가치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옳은 답이고요. 단지 몇 가지 변수가 없다면 가장 정확한 교과서적 답이겠죠.

자 그럼 제가 그 ‘변수’라는 놈에 대하여 잠시 말씀 드리지요.

분명 재화의 가격은 ‘현재가치’와 ‘미래가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외에 몇 가지 변수들이 바람직한 방향을 흩트려놓지요.

그 첫 번째가 바로 ‘내재가치에 대한 객관적 잣대’ 입니다.

지금 현재 어떤 차를 운행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그냥 평범한 2,000cc자동차를 소유하고 계신다고 생각하겠습니다. 현재 2,000cc소유의 차를 가지고 계신 것은 가격대비하여 품질과 성능이 본인의 내재가치와 부합이 되었기 때문에 바로 그 차에 대한 내재가치를 만족하셔서 그 차를 구입하시고 이용하시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말씀하신 분의 내재가치와 모든 사람이 느끼는 내재가치는 같을까요?
만일 2,000cc차가 2,500만원 정도 한다면, 모든 사람이 그와 동일하게 그 내재가치에 동의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질문하신 분께서 만일 3억 원 정도의 집을 소유하고 계신다면, 금리 6%를 따졌을 때 한 달에 약 150만원 정도의 비용을 내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 기준이 없다는 것이지요.
많은 비정규적. 거의 1,000만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의 비 정규직들이 그 정도의 돈을 한달 월급으로 못 받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분들은 3억 원에 대한 집의 내재가치를 얼마로 환산할까요?
이는 나의 내재가치기준과 남의 내재가치기준이 다른 명확한 이유입니다.

현재의 내재가치란 것은 모든 이들의 수요와 공급에서 맞추어지는 것이지, 내가 “이 물건은 어느 정도 하면 적절하겠다.” 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습니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말씀하신 데로 강남의 집값이 10억이라면 진정한 내재가치는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답이 없답니다.
왜냐면 모두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버블이라고 한다면, 시장에서 분명히 조정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현실이겠죠. 그 현실 속에서 타협점은 있을 테고, 그 타협점이 바로 미래의 ‘내재가치’를 포함한 답이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다수의 의견 속에 암묵적으로 협의된 가격이겠죠.

만일 “5억 원이 정상이다. 그리고 현재 그 가격이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모르긴 몰라도 곧바로 질문하신 분을 구매하러 갈 것입니다.

이는 두 번째로 말하고자 하는 “심리적 가치”입니다.

자녀분이 혹 대학에 갈 나이인지는 모르겠네요.
왜 굳이 ‘서울대’를 포함한 ‘일류대’에 많은 분들이 보내고 싶어할까요?
일류대가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대학을 들어가서, 그곳에서 열심히 학문에 열중하면 되지 않나요? 꼭 일류 대를 나오면 100% 돈이라는 놈이 따라올까요?

바로 이는 최소한의 “자존심(Pride)”과 “성공”이라는 명예심도 그 바탕에는 깔려 있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무엇. 바로 “심리적 가치”입니다.
‘심리적 가치’라는 것은 항상 ‘미래 가치’와 대부분이 같은 방향을 이루지요.
왜 많은 부자들은 그들만의 동네와 지역에 모여서 사는 것일까요?
그들은 정말로 그 돈을 은행에 넣어 놓는다면 얼만큼의 이자가 한 달에 나오는지 몰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바로 “심리적인 내재가치” 때문에 그러는 것이죠.
그 ‘심리적인 내재가치’를 고려하지 않는 다면, 지역에 따른 가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참 웃긴 일이지요. 모든 아파트 값이 동일해야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쉽게 이야기 한다면, 국산 2,000cc 차를 타시는 분과 수억원에 이르는 벤츠 같은 차들이 타고 다니시는 분들은 차의 성능 이외에 그 브랜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차의 “심리적 가치”에 대한 비용 또한 지불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 답은 바로 위 두 가지의 가치보다 위에 있는 “나와 주변의 가치”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파트를 투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일반화 되었지만, 그 위에는 “나와 내 가족의 영역”이라는 가치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것이지요.

만일 어떤 사람이 하루 방값이 50만원인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데, 집값이 3억인 내 집을 보고 주거의 형태를 바꾸어 살아보자고 제의한다면, 나와 내 가족을 모두 데리고 호텔을 집처럼 사실 수 있나요?

하루의 방값이 50만원이라면 한 달에 소요되는 비용이 2,500만원일 텐데 분명 남는 장사 아닌가요?

아마 100이면 100모두 싫다고 할 겁니다.
답은 제가 말씀 안 드려도 아실 듯 하네요.

아파트 값이 얼마고 한 달에 얼마의 비용을 얻을 수 있는데 이건 잘못된 가격이고 내가 보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바로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죠.
거기에 많은 분들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 수익률을 계산하며 이것저것 ‘수치와 데이터’를 내 놓고 있습니다.
‘집은 거주이다’라고 항상 말씀하시는 분들이 집에 투자된 비용에 대한 수익률을 더욱 강조합니다.
왜일까요?
바로 그분들도 ‘집은 거주이다’라는 순수한 접근방식이 아닌 ‘집은 수익이 나야 한다’의 투자의 관점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계산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있는자나 없는자나 생각이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이죠.
바로 ‘돈’입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 하여도 현재의 위치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1)월세와 2) 금융소득종합 과세에 의한 세금까지 현실적 비용만 고려하여도….

글쎄요……

그 나머지가 바로 제가 말씀 드린 위 3가지의 이유로 채워지는 것이겠죠.

몇 십억을 호가하는 집에 사는 분들이야 뭐 돈이 많다는데 아무리 ‘기회비용’이 어떻고 저쩌고 해 보았자 전혀 상관없는 분들이시고요.
그렇다고 이분들이 일반 서민들이 사는 20~30평대의 아파트에 안 살고,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이르는 집에 사는 것이 은행의 이자비용을 몰라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말씀하신 계산방식으로 해서 아직까지 집한채의 이자소득을 계산해서 부자가 된 이는 평생 한 명도 못 보았습니다.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한다면, 남도 똑똑하다고 인정해야만 비로소 내 자신이 똑똑해 질 수 있는 자세가 되는 것이랍니다.

그렇다고 집을 사라고 제가 부추기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말했듯이, 자신의 현실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답일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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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어디까지 이야기 하였던가요?

‘유목민적 창조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만 것 같군요.
답은 찾으셨는지요.


바로 ‘휴대폰과 인터넷’ 입니다. (신용카드도 될 수 있지만, 이는 인터넷에 기반을 두기 있다고 생각하기에 잠시 상위개념으로 인터넷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현대인에게 이제 고정된 지역이나 직장의 개념은 바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즉 항상 이동을 해야 하며, 그것이 돈과 관련이 없는 것 즉, 여행일지라도 앞 동산이나 개울이 아닌 비행기를 이용한 골프와 그 밖의 여행을 하고 있죠. 이는 100년 전 아니 30년 전의 우리네 모습과 비교하면 가히 ‘유목민적인 성향’ 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전 유목민들은 ‘식량’ 과 ‘날씨’의 두 가지 조건을 향하여 끊임없이 이동하였고, 현재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도구’는 다르지만 ‘이익추구와 삶’에 대한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유목민적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더욱더 빈번하고 넓어질 것이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 거의 대부분의 인류가 유목민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죠.

그것을 알고 있 는 삼성은 바로 자신의 이익을 확장을 위한 철학으로 ‘유목민적인 상품’에 그들의 사업을 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도체는 아니잖아요?” 하고 물으신다면 이는 “쌀은 밥이 아니잖아요?” 와 같은 말입니다.반도체 역시 유목민적 상품이죠.

아마도 ‘삼성종합기술원’ 에서는, 10년을 넘어서 2~30년 후에 이용하게 될…즉, 핸드폰이나 노트북 그리고 펜, 종이 등의 사용이 하나로 합쳐진 기술을 개발하고 있겠죠.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미래의 먹거리 즉, 인류가 가지고 다니면서 어느 공간에서나 일을 하고 통신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그런 기술을 개발해서 시장에 내 놓을 테고요.

제 자식놈이 삼성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꼭 삼성에 들어가봐야 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먹고 살고자 하는 철학을 ‘디지털 유목민’으로 내세웠으니 그것은 그냥 여기 컴퓨터에 앉아 있어도 훤히 내다보이는 사실일 겁니다. (저만 예측하고 있는 것은 아니죠? ^^)

하지만 이것을 이야기 하려고 삼성에 대하여서 이야기 한 것은 아닙니다.
‘디지털 유목민’은 현재 삼성의 먹거리라는 경영방식을 표방할 지는 몰라도, 그들이 과거 십몇 년 전부터 내세워온 이른바 ‘창조경영’을 이야기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이 현재 그러니까 삼성이 현재 그들의 경영철학인 ‘창조경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은 그들에게 물어봐야겠지요.
현재 진행형인 경우, 십 수년 동안 무엇을 창조경영을 하였나?라는 질문에 그 답이 지속적인 진행형일 경우,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 것입니다.
추후 일본의 ‘유목민적 창조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지만, ‘창조적 경영’은 것은 단 한번에 끝나고 말 바에야 지속적인 진행형의 모습의 그 사회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삼성의 이런 ‘유목민적 제품’ 이나 ‘미래 먹거리’를 통하여 그들이 주장하는 초일류기업에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올랐을지는 모르겠으나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은 그들이 주장하는 초일류 기업이 되기 위한 그리고 그들이 그처럼 주장하는 경영철학인 ‘창조경영’은 아직 진행형이니까요. 제가 볼 때, 창조적 경영을 위해 노력하지만 내부적인 그들만의 관리시스템. 즉, ‘체계화와 관리의 삼성’은 결코, 창의적인 사고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철학은 ‘창조성’을 주장하지만, 실은 그 내부를 본다면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듯 보여지더군요. 이것이 삼성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그들 또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구성원이기에 구성원을 공급하는 나라전체의 분위기도 중요하겠죠. 국가와 사회적 이익이 그들과 동일 선상에 놓여있을 때, 바로 그들의 힘이 극대화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아직 국내기업 중 그리고 어느 집단에서 심지어 한국이라는 국가에서도 이런 생각을 이른바 ‘중심철학’으로 가지고 있는 곳이 없기에 제가 일전에 말한 것과 같이,
“아직까지 삼성을 따라갈 곳이 없겠구나!”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사회는 ‘창조적 교육’ 보다는 여전히 ‘주입식 교육’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문제점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들(삼성)은 꼭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창조적 결과물을 내 놓을 수 있는 외국의 ‘수퍼 엘리트 계급’을 그들이 영역으로 지속적으로 흡수하는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한국의 서울대보다 한참 떨어지는 외국에 대학에 다녔어도, 그들이 창조적인 산출물을 낼 수 있는 모습이 조금만 있다면 삼성이라는 회사는 주저 없이 서울대 졸업생보다 수십 배의 연봉을 주고라도 데려올 것입니다. 현실도 그렇고요.

‘창조적 경영’과 더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그 무엇이 바로 ‘창조적 주체’ 입니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몰라도 삼성이라는 기업은 많이 알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업의 그들만의 Name Value(브랜드 가치)를 높일 동안,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는 그에 못 미치게 한참 뒤떨어진 위치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죠.

이는 이전에 말한 듯이, 미래 20년 혹은 30년 후에 국가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부합되지 않았을 때, 기업이 국가를 등지는 것보다 더욱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킬 사실입니다.

즉, 삼성이라는 회사도 그들의 이익이 한국이라는 나라와 부합되지 않는 다면 한국을 그냥 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신만의 색깔. 즉, ‘창조적 주체’로써의 기능을 못하는 것이 더 무서운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혹, 아닐 것이라고 그렇게 되지는 절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반문을 해드리죠!
삼성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바로 주주죠!

그렇다면, 최대 주주는 대한민국 국민인가요? 아니면 정부인가요? 아니면 외국의 특정 투자자인가요?

[다음편에 계속해서 올리겠습 니다.]

Ps: 며칠 잠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생겼네요. 다음주에 글을 못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