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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글모음/김현정님 글모음

한국30년 14(2012년 2월 16일)

by 크레도스 2012. 3. 21.

지인 분께서 쓰신, ‘변하지 않는 반복’이라는 글 잘 보셨나요?

저도 글을 보면서 한참 재미나게 글을 읽었네요. 제가 생각했던 대로 그대로 이야기 해 주셔서 특별히 더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도 한마디 하려고요.

산을 오르고 올라 정상에 올라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면, 모든 사람이 각기 느끼는 감정이야 다를 수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다 매한가지 아닐까요? 산 아래 골자기가 크게도 작게도 보일 수 있겠지만, 골자기는 골자기고 구름은 구름일 뿐이니까요. 제가 이야기 하는 것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게 잘 이야기 해 주셔서 저도 배운 점이 많답니다.

그럼 제 방식대로 조금 더 이야기 해 볼까요?

‘중개상’이란 표현을 하셨지만, 제 나름대로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매개자’라 표현하는 것이 어떨까 보여지네요. 유식한 말로는 요즘 기업에 컨설팅 하시는 분들은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표현을 쓰시기도 하시더군요.

즉, 후진국의 1세대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것이 작은 개발비용으로 매출을 일으키는, 그러니까 신발이나 그릇 아니면 일상용품 등의 작은 개발비용으로 도매와 소매를 섞어서 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이 주를 이루었죠.

그 이후, 이러한 1세대 비즈니스 모델이 포화상태에 이르다 보니, 남들과는 차별화를 이루는 것을 내부에서 필요로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내부에서 제품이나 아이디어 개발에 대한 필요로 인하여 비용증가로 이어지게 되었고 제품 혁신을 하기 위한 비용이 지출되었죠. 바로 2세대 비즈니스 모델이랍니다. 당연히 개발비용과 혁신비용은 과거에 지출하지 않아도 될 비용의 증가이고 이는 과거와 같이 동일한 매출을 올린다 하더라도 수익의 감소는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것이 현실일터이고요.

그 이후에 바뀌게 되는 것이 바로 마지막 단계인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것이죠.
판매와 분사 그리고 라이선스 내부와 외부의 개발비용들이 모두 분업화 되고, 결국에서는 중앙에서 이를 통제하여 움직이는 ‘매개자’ 만이 가장 큰 이익을 취하는 모습이랍니다.

애플의 예를 잘 들어 이야기 주셨죠?

누구나 제2의 스티브 잡스가 되기를 원하죠. 중요한 포인트 2가지가 무엇인가요?
‘반복의 속도’가 빨라졌다고 여러 차례 제가 말했듯이 제품의 수명주기가 기술혁신을 점점 어렵게 하고 있죠. 수명주기가 짧다는 것은 제품생산에 투자된, 그러니까 기술개발과 생산을 위해 투자한 돈을 제품을 팔아서 이익을 남겨 ‘자금 회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죠. 또한 여러 기술을 융합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이냐가 중요한 이슈이고요.

그러다 보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술개발 기간을 단축해 투자금을 줄이고, 신기술 개발 후에는 빠르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죠.

애플을 보면 아이폰을 만들면서 제품의 핵심기술 개발과 디자인, 프로그램, 마케팅은 애플이 담당하고, 부품은 여러 반도체 회사에서 구매하여 제조는 대만의 폭스콘에 아웃소싱을 했죠. 또 누구나 애플 제품에서 사용 가능한 어플을 개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어플의 유통은 어플스토어에서만 할 수 있도록 제한 했답니다.

‘기술핵심’과 ‘유통’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 아웃소싱했으니 투자금 회수에 대한 부담감이 없을 테고, 이 모든 융합들은 애플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 놓은 것이죠.

이런 시스템은 애플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많은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듯이 찾을 수 있죠.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하죠.

자신만의 기술이나 노하우가 그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업체나 사람을 엮을 수 있는 네트워크,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구에게 물건이나 기술을 팔 것인가에 대한 대상. 이 세가지가 필요할 듯 보이네요.

앞으로는 한국에서만 한국업체와만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 영어나 중국어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느냐에 따라서 본인 스스로가 배우든지 아니면 자신의 네트워크 속에 사람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보여집니다.

제가 쉽게 이야기 하고자 해도 제가 쓰는 단어나 표현이 가장 쉽게 쓴다고 하는데도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으시니, 쉽게 알아들으시라 부탁한 것이랍니다. 똑 같은 이야기인데도 제가 볼 때도 제 이야기보다는 제 지인 분께서 이야기 하신 것이 더 쉬워 보이고 더 정확히 집어주신 것 같네요.

앞으로도 자주 부탁 드리려고요.

저는 어떠한 방향으로 세상이 발전하고 변화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갈 거예요. 그리고 그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해쳐나가는 방법을 이야기 하겠지만, 제 지인 분에게서도 많은 답을 얻길 바랍니다.

자 지난번 제도권의 틀 속에서 그리고 그런 개인뿐 아니라 사회전체가 발전하면서 어떠한 이동과 변화가 시작 될 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로 했죠. 그럼 이야기 시작해 볼까요?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의 모습을 보면, 1960년대 초 오징어 등 수산물을 비롯하여 광산물이 대부분이었죠. 61년 4,000만 달러 수출실적을 올릴 당시에 10대 수출품목 중 철광석이 530만 달러, 그리고 중석이 510만 달러를 차지하며 수출효자종목 1~2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62년도에 수출액이 5481만 달러였는데, 이중에서 돼지, 생선, 마른 생선, 조개류, 김이 차지하는 양이 2,185만 달러였답니다. 그리고 철광석이 1,500만 달러 정도였고요.

그야말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품목이 수출효자를 차지하고 있었죠.

그러면서 70년대 들어서 한일합섬과 선경, 코오롱 등 섬유회사들이 탄생하고 이와 더불어 ‘국제’와 ‘삼화’라는 신발회사들도 탄생하고 이들을 필두로 한 경공업제품들이 70년대 한국의 수출 주력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박통을 필두로 한 새마을 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중화학공업으로 국가정책지원이 대거 진행되고, 이는 철강과 선박 같은 중공업이 다시 수출효자 종목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랍니다. 직접 손을 움직여야 하는 수공업이 필요했기에 지금의 중국처럼 한국은 매년 10%에 가까운 성장을 맛볼 수 있었던 시대이기도 하죠. 또한 70년대 섬유산업은 OEM방식의 의류산업을 왕성하게 키우는 계기도 마련하였죠.

그리고 90년대를 들어서면서 다시 주도적인 수출품목은 반도체와 TV 그리고 LCD 자동차등 연구개발을 위해 필요한 인력들이 꾸준히 요구되는 사업으로 바뀌게 되었고, 이 시기에 많은 고급인력들이 그들의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 전에는 대학에서 기계나 전자를 전공해도 취직할 회사가 없었지만, 80년대 중반 이후에 본격적으로 공대를 나온 대학생들이나 박사들이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시기이기도 하고요.

이때까지 모든 사회 어느 산업분야에서든지 사람이 필요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어찌 변했나요?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한국이라는 사회가 저임금을 기반으로 글로벌 한 경쟁을 크게 할 이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그리고 인도, 필리핀 등 저임금을 강력한 무기로 내세운 개발도상국에게 ‘제조업’을 내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랍니다.

예전에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이 한국에게 제조업을 내어 주었던 것처럼요.

그러면서 미국이나 유럽은 자신들이 돈을 버는 수단인 제조업의 자리를 개발도상국에게 넘겨주고 그들은 ‘금융’과 ‘지적재산권’이라는 막강한 힘을 다시 키워낸 것이죠. 그들은 돈을 원하는 만큼 찍어내서 여유롭게 쇼핑을 하고, 그 채권을 중국이나 다른 제3국이 사도록 만든 것이죠. 바로 ‘금융’과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말이죠. 중국이 돈을 벌어 미국의 채권을 사고 부자인 듯 보이지만, 이는 실제로는 속임수랍니다. 그런데 그 속임수를 아는 사람이 많이 없죠.

쉽게 이야기 해 볼까요?

개인이 은행에 3억을 빌리면, 은행은 채권자가 된답니다.
그리고 돈을 빌린 개인은 채무자가 되겠죠. 빌린 돈 3억을 가지고 쇼핑도 하고 집도 사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다가, 3억이란 돈을 다 썼답니다. 다시 개인은 은행에 가서 3억을 다시 빌리죠. 은행은 이제 6억이라는 채권이 있습니다. 반대로 개인은 6억이라는 채무가 있고요.

은행은 6억의 채권이 있기 때문에 부자이고, 개인은 6억의 채무가 있기 때문에 가난한 가요? 단지 은행이 가지고 있는 것은 신용으로 써준 ‘차용증’뿐인데요? 중국이 미국의 채권을 보유하면서 땅이나 금 등 실물은 담보로 하고 채권을 사들인 것인가요? 채권에 대한 담보는 아무것도 없죠?

미국이 부자인가요?
아니면, 중국이 부자인가요?
잘 생각해 보세요.

현재의 한국사회를 이야기 하면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현재의 금융위기에 대하여 조금만 이야기 해 볼까요?

그리고 91년 소련이 붕괴된 후에, 2007년까지 근 15년간 과도한 쇼핑을 즐긴 미국과 유럽이 그 한계에 다다라 금융위기를 촉발시켰고, 이는 올해 다시 그 위험을 유로존의 재정위기라는 모습으로 경고 하고 있죠.

경제위기는 말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 당연한 것이죠. 자본주의 라는 것이 자유로운 이윤추구의 보장을 그 근간으로 하는데, 과연 그 자유로운 이윤추구의 범위가 어디까지냐가 제일 문제인 것이죠.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있을까요? 바로 답이 없는 것을 근간으로 시작했기에 문제는 태초부터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현재의 자본주의 랍니다.

과거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전쟁이라는 극단의 방법으로 돈을 찍어내고 소비를 위한 생산을 유발시켰지만, 이제는 그때와는 상황이 조금은 다르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전쟁을 하기에는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이윤추구를 위한 끝없는 욕심은 금융산업을 극대화 시키죠.
경제위기 촉발의 원인이 뭔가요?
바로 ‘빚’이죠.

투자를 위해서 누군가가 제3자에게 돈을 빌리고 투자가 잘 안돼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없게 된다면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위험에 빠질 수 밖에 없답니다. 자유로운 이윤추구상황 하에서는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규모를 키우려는 것은 당연할 테고, 여기서 또한 당연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남의 돈을 빌려서 사업을 키우는 그러니까 레버리지 효과를 이용한 규모의 경제학을 만들 테니 가장 크게 발전하는 것이 금융산업이 아닐까요? 하지만, 기대수익이 높아지면 뒤따르는 것이 위험도 높아지는 것이죠.

결과는 어떠했나요?
과도한 차입투자와 금융산업의 발전은 파생상품이라는 사람의 욕심이 만들어낸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품을 만들어 낸 것이죠.

자본주의는 말이죠.
빚을 권할 수 밖에 없어요.
앞으로도 더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 질거예요. 더 가속화 될 것이라는 것은 금융산업뿐 아니라,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복지비용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죠. 일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빚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지만, 문제는 ‘어떻게’라는데 에서는 그 누구도 답을 주고 있지 않죠.

새로 서울 시장이 되신 박원순 시장도 그 분께서 주장하시는 ‘복지’란 결국에는 돈이 필요한 것이니, 지금 서울시 세수 상황에서 ‘빚’을 내지 않고 복지를 늘리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답니다.

이러한 빚의 증가가 가속화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인이건 기업이건 정부이건 간에 무한책임이 없다는 데서 비롯되죠. 만일 남을 돈을 써서 자식 대대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 개인이건 기업이건 기관의 결재권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남의 돈을 가지고 사업을 하면서 잘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잘못되어도 자신이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남은 돈만으로 책임을 지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즉, 투자했다가 망하면 개인이나 기업은 유한책임을 지기 때문에 남아 있는 자산 가치만큼만 채권자에게 갚으면 그만인 것을 한국의 IMF때부터 근래 미국에 이르기 까지 수도 없이 우리는 보아 왔답니다.

자 다시 돌아와 볼까요?
요즘 신문을 보면, 자신이 99%라는 펫말을 들고 월가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간단하게 일반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로 저는 보이더군요.

자본주의 하에서 위기가 계속 나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분배가 아닌, 개인 스스로의 능력에 따른 이윤추구의 극대화에 그 답이 있답니다. 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목표라는 거이 ‘주주 이익의 극대화’ 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줄여 제품가를 낮추고 판매를 늘려야 하죠. 여기 비용을 줄이는 것에는 인건비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이전보다 컴퓨터와 자동화 등을 통해 사람의 숫자를 줄여나가지 않는다면, 다른 경쟁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당연히 근로자의 수를 줄이고,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억제할 수 밖에 없죠. 그러다 보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나 임금인상이 억제된 근로자나 가난해 질 수 밖에 없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근로자 이들은 바로 ‘소비자’라는 것이죠.

주주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주주를 부자로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이는 근로자를 그리고 실직자를 가난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답니다. 당연히 한쪽은 부자가 되고, 다른 한쪽은 점점 더 가난해 질 수 밖에 없죠.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하여, 부자들은 다시 소비력이 떨어진 근로자를 위하여 ‘대출’이라는 좋은 제도를 만들어 낸답니다. 그들의 이익을 더 키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자신이 물건을 사야 하는데, 그 물건을 사야 할 근로자가 돈이 없다면 돈을 빌리게 해서라도 물건을 사야 하게 만들어야겠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성장을 위한 지출이 먼저냐, 지출로 이어지는 성장이 먼저냐?’는 같은 논리지만, 부자의 입장에서 볼 때 성장을 위한 개인의 지출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고, 가난한 근로자들이 지출하기 위해서 빚이란 것으로 그들의 소비를 지탱하게 만드는 것이죠.

요즘 사람들 너무 소비만하고 저축할지 모른다고 나이든 양반들이 젊은 사람들 비판을 하지만, 실질임금이 이같이 거의 늘지 않은 상황에서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축을 줄이고 대출을 늘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데 그들을 비판이 과연 옳을까도 생각해 봐야 한답니다.

20년 전 버스비가 60원 할 때 임금과 지금 버스비가 1,000원 할 때만큼, 임금 또한 그만큼 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니까요. 버스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의식주 모든 부분에 있어서 최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소득은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사실 아닌가요?

기업은 국내에서만 경쟁해야 하는 과거와 달리 이제는 국가간의 경계가 없어진 해외의 다른 회사들과 경쟁을 해야 하다 보니, 자국의 국민에게 높은 임금을 주고 일자리를 보장한다면 경쟁에서 질 수 밖에 없는데 그리 하지 못하고, 외국의 값싼 노동자들에게 그 일거리를 주거나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죠.

과거에 ‘현재는 미래의 자화상이다.’에서 이야기 했듯, ‘국가간의 경계는 없어지고 기업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기업은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주체가 될 것이다.’ 라는 것이 바로 이 이야기 랍니다.

미국의 건설현장에 보면, 건설 노동자들은 법에 의해 적정임금(Prevailing Wage)를 받도록 돼 있답니다.

Public work project를 보면, 목수는 시간당 44.02불, 철근공은 39.85불, 배관공은 50.11불을 받도록 하죠. 그리고 이 임금을 받지 못하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If you believe that you have not received proper wages or benefits, please contact us”
“적정임금을 받지 못할 경우, 주 정부 노동국에 신고해 주세요.” 라는 이야기죠.

미국이나 유럽은 제조업을 개발 도상국으로 넘겨주고, 그들은 금융과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요?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선진국도 아니다 보니, 어느 한곳의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 상황이죠.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처럼 자국민의 근로자에게 이 같은 적정임금을 보상할 수 있을까요?

현실은 임금을 더 적게 주는 사람을 찾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랍니다. 기업의 로비 속에 정부는 이런 상황을 용인하고 권장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즉, 대한민국 자국민과 외국인 노동자를 경쟁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 주소랍니다.

건설현장만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IT와 기술강국이라고 대한민국을 자평하고 있지만,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중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값싸게 들여와 개발하게 한다더군요. 한국에서는 한달에 350만원을 주어야 하는데, 중국 개발자는 100만원만 주면 된다고 하면서, 일부 대기업에서 건설 노동자 뿐아니라 외국인 개발자까지 한국에 들여오고 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 주소랍니다.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앞으로는 건설 노동자만은 아닐꺼예요. 전 부분에 걸쳐서 힘든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죠. 이는 90년대 한국에 많은 기술자들이 외국에 가서 일한 것과 동일한 환경이 된 것뿐이랍니다. 길거리의 5천 원짜리 커피를 즐기는 것이 사회의 보편적인 환경으로 변모되고 발전된다면, 그에 합당하게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한답니다. 얻는 것이 있다면 분명 잃는 것이 있다가 자연적인 모습이니까요.

이러한 사회가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낼지는 만일 한국이 금융산업이나 지적재산권이 강력하여 선진국이 되었을 경우, 아니면 경제가 후퇴했을 경우의 두 가지 예를 보면서 예측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가까운 일본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면 이 두 가지 가정하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 지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답니다. ‘현재는 항상 미래의 자화상’ 이었으니까요.

깊게 이야기 하기 전에 조금씩만 이야기 한다 그리 생각하세요.
나중에 일본 이야기 하면서 깊게 이야기 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