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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글모음/김현정님 글모음

한국50년과 부동산12

by 크레도스 2011. 9. 8.

부동산뱅크 게시판에 몇 개의 글을 올리면서 이렇게 글도 못드리고 해서 마음에 뿔나신분 없으셨으면 하네요.

자 오늘은 무슨 재미난 이야기로 시작을 할까요?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좋겠죠? 이는 투자방향과도 상관이 있답니다.
작년에 제가 ‘보이지 않는 힘’을 쓰면서 수차례 이야기 한 것이 바로 ‘인플레이션’이라 했답니다. 그냥 현상만 보고 전문가의 말을 보지 마세요.

금융위기 이후에 그 위기를 모면하려고 전 세계적으로 취한 공통적인 방법이 돈을 뿌린 것이었죠? 맞나요?
그러면 그 돈이 유동성을 일으킨다는 것은 책을 봐야 아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당연히 예측할 수 있는 결과라는 것이죠.

이것이야 지금 보여지는 것이니 여기에 이야기하는 것보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더 궁금해 하는 것이 바로 ‘언제까지 이 장세가 갈것이냐?’에 더욱 궁금해 하시겠죠.

지금 풀린 돈을 회수하려면 금리가 10%정도까지 올라야 하는데, 그리되면 현금 쌓아놓은 기업들 다 망합니다. 신문에서 대기업 대기업하니 우리나라 기업들 모두 현금 쌓아놓고 장사하는 줄 알지만 실은 거의 대부분이 돈을 빌려 사업하는 중소기업 영세 상인들이 90% 가까이 되죠.

금리를 올려서 집값을 잡겠다는 발상도 좋지만, 금리를 올리게 되면 대출받아 사업하는 분들 많이 어려워지죠? 대부분 유주택자들이야 주택을 담보로 기준금리가 올라가도 낮은 이율로 돈을 빌릴수 있지만, 대부분의 서민들과 중소기업들은 지금도 10%가 넘는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는데 기준금리가 10%가 되면 이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얼마만큼의 이자를 내야할까요?

이미 답은 나온것이죠.

유동성이란 결과적으로 그 어느 부분에서 자체적인 흡수가 되어야만 해결이 되죠. 그것이 주식이건 부동산 이건간에요. 요즘 시국이 어수선하니 시중에 투자되지 않고 있는 자금을이 상상을 초월한답니다.

전세가 오르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집의 거래를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지금은 막대한 유동성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풀게되어 돈의 쏠림이 시작되면 이제는 국가도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못하는 것이랍니다.

쉽게 예를 들어드릴까요?
1억짜리 집이 모여있는 1,000세대의 아파트단지에 매물이 10개 나와있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누가 10억을 가지고 다 매입을 했죠. 그러니 몇몇 곳에서 1억 1000만원짜리 매물이 2~3개 나왔답니다. 그리고 그 매물을 누가 4억을 가지고 거두어 갔죠. 이후 가격이 오르면서 한 2억까지 오르는 동안 20개의 매물을 거두어 가버리면, 1000억짜리 아파트 단지는 30번의 거래를 통해서 그러니까 50억 정도의 거래를 통해서 2,000억짜리의 단지로 변하는 것이죠.

늘 이야기하는 ‘나비효과’라는 것이 바로 이런것이랍니다.

지금은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내에서 이 돈이 돌수만 있다면야 좋겠죠. 하지만, 자본시장이 개방된 상황하에서 주식장만이 자본이 먹이가 될 수는 없답니다. 돈이 되는 것인데 무엇인들 그 먹이감의 대상이 못될까요?

이런 기조는 향후의 2~3년은 기본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답니다. 더 진행될지 말지에 대해서는 그때 가봐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2~3년은 꾸준히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다른 말로 물가는 계속해서 오를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발전하는 중국이 모든 원자재를 빨아들여 모자라기 것 이외에도 자본이 매점매석을 통해 가격을 올리기 쉽다는 것이죠.

그러면 무엇에 투자해야 할까요?
눈치 빠르신 분들은 벌써 답을 알아 채셨겠네요.
답은 공란으로 남겨 놓으렵니다.

지난번 노태우 시절의 200만호 건설과 임차기간이 2년으로 늘어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말았죠?

자 그럼 한번 노태우시절을 정리해볼까요?
신도시의 200만호 건설을 통해서 결과적으로는 87년부터 폭등하던 주택가격을 91년 공급되는 시점을 통하여 집값의 안정과 하락을 유도해 냈죠. 91년 집값은 매년 20%가까이 폭등하던 것과 달리 처음은 전국적으로는 -2.1%, 서울은 -0.5%로 돌아섰답니다. 이후에도, 92년 -5%, 93년 -2.9%, 94년 -0.1%, 95년 -0.2%로 하락을 지속하게 되었죠.

주택보급률 또한 91년 신도시 건설이전의 74%에서 97년 92%로 증가했죠.

이때 신문 인터넷으로 뒤져보시면 아시겠지만, 외신들이 ‘중국의 만리장성 건설 이래 지상 최대의 건설사업’이라 소개할 정도로 1기 5개 신도시 200만 가구공급은 이후 김영삼 정권이 주택문제에 한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도움을 준 것이랍니다.

자 그렇다면 다음에 이야기할 김영삼 정부는 이러한 200만호 공급을 통해서 나타난 결과에 대하여 부동산에 어떤 정책을 썼을까요?
답은 아주 간단하죠. 왜냐면 ‘반복’이니까요. 다음글의 김영삼시절을 돌이켜보면서 ‘반복’인지 아닌지 확인만 하면 된답니다.

전두환 정부시절부터 노태우대통령은 주택문제가 얼마나 정치에 중요한 것인지는 본인 스스로가 전두환 재임기간 내내 보아왔으니, 많은 준비를 한 것이죠.

88년 노태우 출범 직후에 당시 경제수석이었던 문희갑은 ‘주택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난다.’라는 발언을 할 정도로 주택문제에 대해서 청화대를 비롯한 정치권의 이목은 한곳으로 몰려있었답니다. 이래 89년 3월에 청화대와 건설부, 주택공사, 토공 등 23명으로 구성된 ‘주택건설기획단’이 구성되었고, 이들이 바로 지금의 1기 신도시를 만든 장본인 들이죠.

이 기획단의 조사와 계획에 따라 89년 4월 27일 바로 ‘1기 신도시 후보지’를 발표하게 되는 것이었답니다. 89년 4월 발표이후, 89년 11월 분단 시범단지 4,030가구가 분양이 되었고 91년 9월부터 첫 입주가 시작되었죠. 그리고 92년부터 3월 평촌, 4월 산본, 8월 일산, 12월 중동등 나머지 신도시에서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었고요.

이들 5개 신도시는 그 나름대로의 계획과 목표하에 만들어진것이죠?
알고 계시나요?
신문에 다 나와있는 이야기랍니다.

분당은 성남시 중원구 분당동 외 15개 일대로 89년 택지 개발 예정 지구로 지정돼 개발되기 시작했고, 인구 40만 명을 수용하면서 한국적인 신도시 개발 모형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로 설계되었죠. 일산은 서울 북부지역 개발과 남북 통일 대비 거점 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에 따라 서울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20km 떨어진 지점에 조성되었고, 평촌, 중동, 산본은 수도권의 주택난 해소라는 본연의 기능 외에 계획적인 수도권 개발을 하겠다는 목적으로 공급된 것이죠. 또한 인근에 위치한 기존 도시 기능 가운데 주거 기능을 분담하는 역할을 수행하려는 목적도 있었답니다.

자 다음은 이제 김영삼 정부로 가야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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