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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글모음/아기곰님 글모음

담합은 가능할까?(2003/07/28)

by 크레도스 2011. 10. 25.

부동산 시장에서 담합이 가능할까요?

통상「담합」으로 불리는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상 사업자가 계약이나 협정등의 방법으로 다른 사업자와 짜고 가격을 결정하거나 거래상대방을 제한함으로써 그 분야의 실질적인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에 반대되는 말은 「자유 경쟁」이며 시장 경제는 이 자유 경쟁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 담합행위는 비난을 받는 것이고 정부에서도 강력히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담합」이라는 용어는 사업자간의 불법 행위를 말하지만 이 글에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담합 행위까지 범위를 넓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동산 시장에서 생각할수 있는 담합은 크게 4가지입니다.
첫째, 건설업자들간의 분양가 결정에 대한 담합
둘째, 시세 차익을 노리고 작전을 펴는 투기꾼간의 담합
셋째, 자기 재산을 지키려는 유주택자간의 담합
넷째, 내집 마련을 싸게 해보려는 무주택간의 담합
이 네가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건설사간의 담합 >
끝없이 올라가는 분양가를 보면 건설사간에 어떠한 담합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심의 눈초리는 한번씩 줄수 있습니다.
몇가지 가능한 유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어느 특정 지구 분양가를 ‘일정 가격 이상으로 책정하자’는 담합이 있을수 있습니다.
담합이 성립하려면 담합의 필요성이 대두되어야 합니다.
즉, 시장 경쟁이 치열하여 서로 제살 깍아먹기 경쟁에 나설때 ‘담합의 유혹’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과 같이 미분양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시장분위기에서는 담합이라는 용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떤 양심(?) 있는 회사가 나타나서 주주나 종업원의 이익에 반하기는 하지만 무주택 서민을 위하여 분양가를 실제 원가에 근접하게 책정한다고 했을때 다른 건설사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담합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그런 회사는 있을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90원에 팔아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선다면 이를 무리하게 80원에 팔려는 회사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담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양권 전매가 제한되고 있는 상황하에서는 시장은 실수요자 위주로 개편되고 있습니다.
이럴때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아파트는 미분양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미분양 사태를 막기위해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가격을 책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을수 있습니다.
이때 대형 건설사로 부터 담합의 유혹이 있을수 있는데, 이러한 담합은 담합을 주도한 일부 대형 건설사를 제외한 공급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손해이므로 정부에서는 이를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활황장에서도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선을 깨기 위해 담합이 시도될수 있습니다.
가령 시장 가격이 80원에 형성되어 있는데, 90원으로 끌어 올리기 위하여 쓰는 방법입니다.
이상한 업체를 하나 내세워서 100원의 가격을 책정하는 방법입니다.
당연히 100원인 업체는 상당분이 미분양되지만 그 가격에 놀란 소비자들은 유명 브랜드의 업체가 90원에 분양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싸다고 느껴지는 착시현상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맨 처음 바람을 잡다 미분양된 물량에 대해서는 나머지 업체가 일정 부분씩 떠안더라도 업계 전체적으로는 그것이 이익으로 돌아갈수 있으므로 담합의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재개발/재건축 조합 물먹이기입니다.
어느 조합이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반 분양분의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고 시공사의 건설 단가는 낮게 책정하려 할것입니다.
그러므로 조합의 입장에서는 시공사간 경쟁 입찰을 유도하는데 이것이 생각대로 쉽지가 않습니다.
조합원들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몇몇 유명 건설사간의 담합으로 조합 길들이기가 가능합니다.
즉, 일부 업체가 입찰에 참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홀수달에는 A,B,C 업체가 짝수달에는 D,E,F 업체가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므로서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 나눠먹기를 시도할수도 있습니다.

건설사간의 담합 가능성은 상존합니다.
특히 세번째는 참여자가 적기 때문에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분위기에서는 담합 행위 적발시에는 회사의 폐업까지도 생각하여야 하기 때문에 건설사간에 담합이 있다고는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법망에 걸리지 않는 ‘암묵적인 담합’이라도 이루어 지지 않도록 정부에서는 감시를 하여야 하며 소비자는 현명한 판단으로 시장에서 그 결과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 투기꾼간의 담합 >
주식 시장에서는 ‘작전’을 통하여 주가를 조작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몇몇 작전 세력이 전주를 모으고, 지분이 적은 기업주에게 협조하지 않 으면 지분을 확보하여 경영권을 뺏는다고 협박하여 자기 편으로 만들고, 한두명 아날리스트를 매수하면 작전은 거의 끝난 것입니다.
일단 주가가 쌀때 이를 대량으로 확보하여 가지고 있다가 자기들간에 거래를 일으켜 거래량을 늘입니다.
이와 함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신기술 개발 설, 외자 도입설들을 솔솔 풍깁니다.
이러면 정보에 민감한 개미들이 달려 붙기 시작하며 거래량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거래량은 주가의 선행지수라고 믿는 순진한 개미 투자가들이 달려 붙기 시작할때 기업에서는 풍문으로 나돌던 호재에 대한 공시를 합니다.
(어느 기업이나 공시할만 건은 한두개씩 가지고 있죠.)
특정 아날리스트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게되면, 이에 화답하듯 시장에서의 거래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이때를 노려 작전 세력들은 자기 물량을 털며, 기업주는 유상증자를 시도합니다.

이런 주식 시장에 익숙한 사람들은 부동산도 같은 시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식 시장의 작전세력을 부동산 시장에서는 투기꾼이라 부르고 싶어하며 이러한 투기꾼의 존재가 실존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나 언론의 책임도 있죠.)
그러나 과연 투기꾼이 있을까요?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서 작전이 가능할까요?

주식시장에서 작전이 벌어지는 것은 삼성전자나 은행주와 같은 대형주가 아닙니다.
물량이 적은 중소형주가 작전 세력의 타겟입니다.
그것은 자금 동원력의 한계 때문입니다.
종합주가 지수를 상대로 작전을 벌일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투연(전국 투기꾼 연합)이라는 것이 있어서 1천억원의 펀드를 구성했다고 가정해보죠.
그것으로 강남의 아파트를 몇채나 살수 있을까요?
불과 1백여채 밖에 살수 없습니다.
이 정도의 물량으로는 한두개 단지의 시세에 영향을 미칠수 있을 것입니다.
주식 시장은 특정 종목을 매집하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종목마다 특성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치동의 삼성 래미안을 전투연에서 먹이감으로 삼았다고 그 시세를 올렸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까요?
실수요자는 그 근처의 선경이나 우성을 훨씬 싼 값에 살수 있다면 대치동 래미안을 살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 작전은 실패할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부동산 시장에서 작전이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부동산 시장은 주식 시장과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투기꾼이라는 것 자체가 언론과 정부가 만들어 낸 허상으로 보이지만, 혹시 이런 사람들이 몇몇 있다해도 이들이 이해를 같이 하는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담합은 어렵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들이 전투연을 만들어 담합을 시도한다해도 부동산 시장의 규모나 성격상 그들이 시장을 좌지우지할 능력은 없습니다.

< 유주택자 또는 무주택자간의 담합 >
간혹 아파트 반상회 또는 부녀회에서 자기 단지의 아파트 값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담합을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도 강남을 필두로 아파트 값이 요동칠 때마다 분당, 목동등 2차 진원지에서는 단지별로 이런 시도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일산등 신도시에서 분당의 아파트 가격에 자극을 받아 “우리도 분당보다 못할것이 무엇이냐?”며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가격 보합기나 하락기에도 마찬가지로 일정 가격 이하로 급매물이 나오면 그 매물을 내논 이웃과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는데 정말 그렇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마다 모두 처한 상황이 다릅니다.
일가구 다주택자처럼 투자용으로 사놓은 사람도 있을수 있고, 일가구 일주택자중에서도 더 투자 가치가 좋은 곳으로 이사하려는 사람도 있고,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서 집을 줄여 가려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입장이 모두 같을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입장을 전제로 남에게 강요해서는 절대 안되며, 반대로 그런 담합의 시도에 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주택자간의 담합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무주택자들간에 연계가 안되었기 때문에 담합의 가능성은 제로였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과거보다는 연계가 쉽게될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몇몇 동호회를 중심으로 “지금 집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투기꾼이니 무주택자들이 담합을 하여 일정 기간 동안 집을 안사주면 집값은 추가 수요가 없으므로 떨어 질수 밖에 없다.”라는 극단적 담합론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이것이 가능할까요?

현실적으로도 가능성이 제로이지만 논리적으로도 모순 투성이의 주장입니다.
첫째, 담합은 이해가 같은 사람 사이에서 가능합니다.
그러나 집값 하락을 주장하는 사람들간에도 구성원이 여러 부류입니다.
자신의 자산이 늘 어가는 속도에 비해 집값 상승율이 빨라서 이것에 당혹감을 느끼는 순수한 사람들(A그룹)이 있는가 하면, 지난 집값 상승기때 팔고 나서 자기가 팔았던 물건이 떨어지면 더 싸게 살려는 투기 성향을 가진 사람(B그룹), 주식 시장에 너무 많은 돈을 묶어 놔서 부동산 시장의 돈이 주식 시장으로 옮겨와주기를 바라는 사람(C그룹), 어차피 부모에게서 물려 받을 집이 하나 있으니 내집 마련을 하면 좋고 아니면 몇년 새집에서 전세 살다가 부모님한테 물려 받으면 되는 뱃속 편한 사람(C그룹), 어차피 몇년후에 근거지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이민등으로 집을 당장 마련할 계획이 없는 사람인데 주위 사람이 수도권의 부동산으로 돈좀 만졌다니까 괜히 이죽거리는 사람(C그룹)등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상존합니다.
이중 B그룹은 만약 집값이 떨어진다면 제일 먼저 살 부류이며, C그룹은 끝까지 사지 않을 부류입니다.

둘째, 시장 가격에 대한 이해 부족입니다.
집값이 오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행복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근거합니다.
결혼후 다가구 주택의 한칸짜리 반지하방 월세로 시작해도 처음에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점차 월세로 나가는 돈이 아까워지면서 전세를 찾게되며 → 그 다음에는 방 두개짜리 → 반지하 탈출 → 소평 평수의 아파트 전세 → 드디어 내집 마련 → 평수 늘려 가기 → 좋은 지역으로 이사가기 → 좋은 층으로 이사가기 → 더 넓은 아파트 마련하기… 이런 식으로 계속 눈높이를 상향 조정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택 보급율이 100%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에 대한 수요는 계속 생기는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도 이론적으로는 주택 보급율이 115~120%에 이르러야 집값을 잡을수 있다합니다.
주택 보급율 100%에서도 집값이 상승하지 않으려면 국민 모두 현재 자기가 사는 곳에서 만족하고 살 경우만 가능합니다.
1층이나 로얄층이나 건설 원가에는 차이가 별로 없으므로 분양가는 같아야 합니다.
이때 같은 2억원에 분양을 받더라도 어떤 사람은 1백만원 더 주고서라도 로얄층에 살고자 할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1천만원을 더 주고서라도 로얄층에서 살고자 하겠죠.
이래서 시장 가격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격차가 거품은 아닙니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정해지는 적정 가격입니다.
좋은 지역 넓은 아파트에서 살고자 하는 것은 보편적인 욕망입니다.
이러한 욕망이 있는 한 집값은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욕망이 인간의 본성일텐데 주택 보급율이 200%가 된다 하더라도 계속 집값은 오를까요?
당연히 아니죠.
수요자의 눈높이가 올라가는 만큼 경쟁력이 없는 주택은 하락을 감수해야 합니다.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면 주택 보급율이 115%~120%에 이르면 오르는 주택의 집값 상승율이나 내리는 집값의 하락율이 균형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에 가서 모든 집값이 동결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이때에도 차별화는 극심해 집니다. 이렇기 때문에 돌과 망고를 식별하는 능력을 계속 키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불균형 현상이 자본주의 병폐일까요?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의 평양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거기서도 대동강변에 있는 아파트의 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경쟁은 치열합니다.
다만 서울의 경우는 돈만 있으면 본인이 살고 싶은데 살수 있지만 평양에서는 그 가치 기준이 권력과의 친소 관계라는 점만 다른거죠.
(극단적으로 말해서 기쁨조에 자신의 누이를 바친 사람만 그곳 아파트에서 살지 누가 압니까?)
인간의 속성이 변하지 않는한 체제를 막론하고 이러한 현상은 계속됩니다.

< 맺음말 >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 다르기때문에 내집마련 시기나 전략이 다 같을수 없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계획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제3자가 하는 이야기는 그저 참고 사항일뿐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하여야 합니다.
부동산 시장에는 투기꾼도 없고 담합도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다만 정보를 판단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결단력이 있어 실행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것을 실행할 기초 자본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만이 있는 것입니다.
대 남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앞의 그룹에 끼지 못하는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의 탓만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의 그룹에 끼고자 우리는 이렇게 모여서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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