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매 해 항상 같은 날 어김없이 찾아오는 명절이지만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명절만큼 즐거운 때는 없는 것 같군요.^^ 어릴 적 저도 그랬지만, 저나 그리고 제 아이들도 지금의 손주녀석들처럼 어릴 적에는 ‘제’ 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있는 터라 제가 느끼는 명절과 손주녀석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관점이 다르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뭐 대수 인가요^^. 예전에는 곶감과 조청의 꿀떡, 그리고 알록달록 왕 사탕이 최고였지만,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는 것뿐 따뜻한 가족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으니까요.
모든 사물이나 가치의 기준이 자신만의 잣대를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가 자신만의 기준에 대한 가치정립 판단을 세우고 또 다시 세월이 지나고 환경이 변함에 따라 그 기준이 변경되고 하는 것을 보면, 사물에 대한 판단의 기준의 불변(不變)이 아니라 유동적(流動的)이라는 것을 뒤를 돌아보니 느끼게 될 수 있었으니까요. 즉,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가치기준이 변할 수 있는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오늘도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그냥 주절이 잠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어볼까 합니다.
얼마 전 그러니까 대선이 한창이던 작년 12월 가장 큰 Issue는 ‘Mr. Lee’ 와 ‘Miss. Park’ 간의 첨예한 정치대립이었죠. 모두들 아시다시피, ‘Miss. Park’의 손짓 하나로 대선의 판국이 변경될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 또 하나의 변수가 등장한 것이 ‘3수의 Mr. Lee’의 등장이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신문지상에 나오고 뉴스에 나오던 이야기라서 뭐 별다른 큰 뉴스는 아니지요. 하지만, 경선이나 전후의 상황을 보면 많은 분들이 ‘Miss. Park’이 ‘3수의 Mr. Lee’의 손짓에 갈만도 하였는데 왜 가지 않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나 의견에 대하여 많이 이견이 있으시기에 저도 제 생각을 말해보고 싶군요.
뭐 제가 그분들 옆에서 보좌하거나 아니면 측근이 친구이거나 해서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을 보면 그 답이 제 나름대로 보이니 단순하게 생각해도 이끌어 낼 수 있는 아주 쉬운 문제였습니다.. 만일 ‘3수의 Mr. Lee’에 간다면, 첫째로, 자신이 이제껏 세운 정통성에 관하여 부정을 하는 것이고, 둘째로, 경선 후 모든 것을 승복하고 돕겠다던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 큰 이유겠죠.
여기까지는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예측하실 수 있겠지만, 눈에 안 보이는 세 번째 이유. 즉, 변수에 대하여서는 많은 분들께서 생각을 안 하시더군요.
세 번째 변수,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국민성을 ‘Miss. Park’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몇 년 전 ‘탄핵정국’ 때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때 보면, 대다수의 많은 국민들이 ‘국정운영은 잘 못하고 있다.’가 대다수의 의견이었지만, “한번 다시 기회를 줄 테니 해 보아라. 그래도 나의 나라님이 잘 못 되게 하지는 않겠다.” 가 바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였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바로 ‘이성’보다는 ‘감성’이라는 성향이 강한 국민성이 ‘측은지심(惻隱之心)’ 이라는 연민을 불러일으킨 것이죠. 그래서 다시 나라님은 일어났고, ‘열린 우리당’ 또한 국회 과반수라는 결과를 낳았지요. 하지만, 한나라당 또한 그것에 견제와 ‘박 전대표’의 감정에 대한 호소로 현재의 한나라 당의 초석이 만들어 진 것이고요.
이제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시는지요?
만일 ‘Miss. Park’이 ‘3수의 Mr. Lee’에게 갔더라면, 그 둘의 표의 합이 결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반대작용으로 ‘Mr. Lee’에게 표가 더 몰릴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즉, ‘1+1=2’ 가 아니라 ‘1+1=1.2’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점을 ‘Miss. Park’이 잘 알고 있는 것이었죠. 자칫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패를 던지고 돌이킬 수 없는 패를 던지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승산 없는 게임대신 확률 높은 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죠. 정치란 보면 참 과학적인 것 같습니다. 절대 모든 것이 계산된 의도대로 진행되면 그 곳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50년 한국 현대사가 이루어졌으니까요. 그냥 제가 살면서 본 것은 그렇게 느껴지네요.
위의 것을 보시면서 무엇이 느껴지시는지요? 경제지표와 동향 그리고 우리네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먹거리와 주거 등 모든 우리네 삶은 정치와 같이 예측 가능한 확률게임을 넘어서 과학적인 통계로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시지는 않으셨는지요?
변수라는 것과 통계적으로 확률이 높은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접하고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고 있는 확률적인 범위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 대부분 일테니까요. 쉽게 이야기 해 볼까요?
모든 이들이 세계화 세계화 하니까 Global 경제에 대하여 저 같은 일반 평범한 아줌마의 생각을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미국의 주가가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연동성에 대하여 우리나라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나라들이 동반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긴밀성을 보입니다. 금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상승하건 하강하건 간에 우리는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여기 게시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의 Sub-prime mortgage loan으로 인하여 미국 집값이 하락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집값이 똑같이 지속적인 하락한다는 등식도 똑같이 적용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Global경제에서 긴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은, 제가 경제학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지만 실제적인 장바구니를 다루는 입장에서 볼 때의 해석은 미국의 돈이 1분 이내에 한국에 와서 어떤 대상이나 물건에 대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거나 쉽게 교환이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금리의 기준은 당연한 것이고요, 하물며 주식이야 말한들 뭐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긴밀한 유대적 관계 속에서도 몇몇 어떤 특정자본에 대하여서는 참으로 예외적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부동자산이 그 대표적인 Case죠. 일례로, 지역적 특성이나 국민성 그리고 특정국가만이 가질 수 있는 변수! 이를테면,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고, 수도권에 인구의 반이 몰려있으며, 그 이외에서는 먹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고, 교육이란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민성과 지역적 특성들은 Global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지요. 이것은 특정지역의 특정한 사람들이 가지는 국민성과의 관계가 더욱 더 가깝기에 모든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특성을 가질 수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비가 많이 오는 우림지대와 비한방울 없는 사막지대에서 과연 물에 대한 효용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만일 주식과 금리와 같이 '연동성'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는 등식이 나온다면 뭐하러 "대출규제"와 "세금"으로 막아놓을까요? 규제를 푼다던 이 당선자는 왜 지금 주저하고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답입니다.
예전 제 글 중에 지방미분양은 ‘투기과열지구해제’ 정도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 금융위기때는 보급률이 낮으면서 미분양도 많았지만, 현재는 보급률도 높으면서 미분양은 더욱 더 많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이 되셨는지요? (설명은 안 드리겠습니다.)
자 지금 실물자산. 특히 집값의 경우에는 규제로 인하여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죠. 더욱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주택자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새로운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 하에 구입을 미루는 경우와 대출규제로 인하여 구입이 미루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추가적인 구입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세금이 두려울 수 밖에는 없죠. 팔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했던 호가 이외에는 급하지 않다면 팔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고요.
즉, 매수 매도 두 쪽 다 버티고 있는 형국에서 현금이 필요한 급한 분들의 물건만이 매매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매수입장에서는 싸게 사서 곧바로 이익이 보이지 않는다면 매수를 안 한다는 것이죠. 이익이 될 수 있는 그런 것. 그런 물건만이 거래가 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더 정확할 것 같군요.
신당이 혹은 한나라당이 집값을 잡아줄거라구요? 오늘 신문에 신당이 또 주도적으로 집값을 부추기는 짓을 하던데..그들이 원하는 것은 집값이 아니라 표라는 것이 이제 아셨는지요?
예전에 제 글 중에서, 제가 자본주의에 대한 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정의를 말한 적이 있는 것 같군요.
자본주의란, 개인이나 집단이 오직 노동을 통해서만 자본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자본의 습성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노동을 통해서만 자본을 습득할 수 있다면 ‘노동자본주의’나 ‘노동주의’가 맞겠죠.
이는 바로 ‘차이’와 ‘차별’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대서 기인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분들이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열망하지만, 세상 어느 곳에도 노동을 통해서만 선진국인 나라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석유가 풍부한 중동지역이 돈을 많을 수 있지만 아무도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죠.
이제 중요한 현실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는 ‘부동산 투기’ 혹은 ‘부동산 투자’, ‘주식투자 혹은 투기’ 등은 바로 자본이 자본을 통하여 획득되는 대표적인 것들이죠. 그 중에 대출이라는 자본필요조건을 통하여 충분조건을 만족시킬 수도 있을 테고요.
노동을 통해서 그 자본만으로 어떤 대상을 획득하는 것과 자본의 활용을 통하여 대상을 습득하는 것 중 어떤 방법이 옳은 방법일까요? 둘 다 틀린 것이 없으며 범죄도 아니죠. 바로 방식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집’이라는 거주의 개념으로 대상을 바꾼다면, 국가나 무주택자분들께서 염려하시는 것이‘의식주'는 바로 살아가는 인간의 기본이기에 자본을 통한 투자는 그 대상은 범죄가 아닐지라도 도덕적이 해악을 수 있다는 반론이 있기에 계속해서 지금 게시판에 논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빈부貧富’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데에 있죠. 경제가 잘 되서 선진국이 되건 안 좋아서 후진국이 되건 간에 사회 구성원간에는 학창시절 ‘1등과 꼴등’ ‘반장과 부반장’처럼 그 차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이 해악’ 이란 어느 정도 일정부분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걸러 순화할 수 있어야 밝은 사회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현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당위성이라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과도한 대출은 해악이라고 부정하고 욕하지만, 불과 2~3 년 전에 100%에 가깝게 대출을 받아 치고 빠지는 식의 투자행태 속에서 많은 이익을 본 사람은 ‘투기’라는 욕을 먹을 수는 있어도 ‘자본’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자본’을 습득한 자본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답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축일 수 밖에 없지요.
남들이 말하는 ‘부동산 투기’ 건 ‘주식투기’건 간에 중요한 것은, 현실은 엄연히 ‘부의 창출’을 이루기 위해서 돈을 돌고 돌 수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가 가장 바보같이 생각되는 말이, “세상 모든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욕하고 싶더군요. 세상 모든 일에 귀천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 누가 잘난 국회의원나리 같은 분이 듣기 좋으라 사탕발림 해 놓은 것일 뿐입니다. ‘직업에 귀천을 없다.’라는 말은 도덕적 사실이고, ‘직업에 귀천이 있다.’라는 것은 바로 현실입니다.
남들과 같은 일반적인 삶 속에서는 차별적인 자본을 이끌어 내거나 차별적인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예측가능한 확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샛길로 빠져버렸네요..^^.
얼마 전 손주녀석 그림 붓 사러 문방구에 갔다가 문구점 아주머님과 이야기 도중 대부분의 문구류가 중국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느낄 수 있는 것이 이제는 음식뿐 아니라 공산품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을 값싼 중국산이 우리생활에 밀접하게 와 닿아있고 이것이 가격인상을 막고 있는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석유를 포함해서 주변의 식재료 전반까지 중국과 인도에서 투기성 자금과 수요의 증가가 맞물려서 이제는 그 위력이 장바구니의 물가. 즉, 중국의 값싼 버팀목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급격한 가격상승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 인가요? 한은이 미국기준금리와 경기침체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동결이라는 수를 둔 것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란의 길에서 내린 결론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더군요.
내년 고액권 발행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고액권 발행보다는 ‘액면절하(Denomination)’가 예상보다 더 빨리 진행될 수도있을거란 생각도 드는군요. ‘참여정부’시절부터 줄기차게 이야기 나온 ‘‘액면절하(Denomination)’’은 그 이야기가 나온 자체가 바로 돈의 가치가 상실되었음을 직 간접적으로 증명한다는 것과 그 필요성의 대두가 현실적이지만……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러기에 너무도 감내해야 할 고통이 많기에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4.19총선이후의 경제환경변화예상’에 대한 글을 올리려 했는데, 오늘도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만 하다가 글을 마쳐야 할 것 같네요.
“말뚝!”
여러분께서 느끼시는 현재의 ‘대못과 말뚝’은 무엇인가요? 기자실 대못질? 행정수도 대못질?
마치 뻥 뚫린 독에 채워도 채워도 차지 않는 독처럼, 쏟아 부어도 부어도 끝이 보이지 않게 돈이 필요하게 만들어 버린 말뚝의 구멍이 저는 가장 걱정이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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