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으로 음식의 간을 보면서 아침상을 차려도, 모든 사람의 입맛이 다 다르기에 어떤분들은 아직 싱겁다 할터이고, 어떤 분들은 짜다 하여 물을 넣고 다시고 간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입맛이 다 다르듯, 어떤 대상에 대하여 느끼는 생각이야 말해서 무엇 할까요? 그렇지만, 각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표현 속에서도 객관적인 것은 있답니다. 소금이라는 것이 ‘짜다’라는 것은 절대의 진리지요. 주관성이 아니라 객관성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넒은 시각을 가지는 것이 바로 이 ‘소금’과 같답니다. 기본을 알려거든, 내가 보고자하는 것을 보지말고, 남은 이것을 어떻게 볼까도 생각해야 한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무엇을 배우고 안목을 넓힌다는 것은 수박의 겉만 핧아 보고 수박은 아무맛이 안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답니다.
경제 이야기야 그간 많은 글들을 통해서 남겼고 이것이 1년 안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에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네요. 요즘 보니 다른 좋은 분들 많이 쓰시니 그분들 글속에서 또 다른 방향으로 배우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호재가 없는 곳은 없죠? 어디지역이 좋다 나쁘다 아니면 찍어달라는 것은 별반 의미가 없을 듯하네요. 다른 곳보다 좀 더 이른 호재정도와 조금 좋은 호재정도이지 사시는 곳 둘어보시면 호재없는 동네는 없답니다. 찍어달라 물어보셔도, 답할 능력이 못되니 이리 예서 답변드리는 것이 맞을 듯 하네요. 누가 어디서 무슨 아파트를 사서 돈 벌었다더라 하면 너무 그것에 집착하거나 부러워마세요. 그 사람이 재테크에 능력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호재의 차례가 이번에 그 동네였다 생각하시면 된답니다.
집값이 오른다 내린다 이야기 많죠? 경기상황은 안좋은데 오르는 것 참 신기하지요. 그것을 가지고 집값이 계속 오른다 내린다의 이야기는 나오고 있고요. 제가 볼 때는 두 주장 다 맞는 듯 보여진답니다. 이제 수도권은 어느 지역을 딱 짚어서 오른다 내린다가 아니라, 지방을 제외한 곳은 내리기가 어렵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옳지 않나 하네요.
호재를 중심으로 먼저 오른곳이 있을터이고, 운 좋으신 분들은 호재만을 잘 찾아 이동하여 자산을 늘리는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도, 모든 곳이 일정부분 이상으로 떠 받혀질 수 밖에 없지 않나 합니다. 풀린 돈이 너무 많고 한쪽에 몰려있으니 그럴수 밖에요.
부동산 규제라는 것도 참 힘든이야기죠.
정작 힘든 곳은 서울/수도권이 아니라 지방이랍니다. 지방에 지은 집들 서울/수도권 사람들이 사지 않으면 팔리기 어렵죠. 이 상태로 계속 지속될 터인데, 자칫 규제하면 집값의 문제가 아니라 그때는 다시 선거 표의 문제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죠.
경기는 안 좋은데 왜 주식, 집값은 오를까를 생각해보면, 풀린돈이 어디로만 가는가를 보면 그 현상과 사람들의 심리가 왜 그런지에 대한 답은 있죠. 그러니 집값이 오른다 내린다. 그리고 경기가 안좋다 좋다의 결론 이전에 현 상황이라면 어떤 방향으로 가겠다라고 스스로 예측해 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지금 보이는 현상을 해석하려 해 보았자 별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답니다. 현재의 모습이 되기 전 과거에 무엇이 있었기에 현재의 결과가 있고, 또한 현재의 모습으로 10년후가 어찌 되는 지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결선 상에서 봐야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집값이 오른다 내린다는 둘 다 맞는 이야기라 이야기 하고 싶네요.
지난번 이야기에 이어 교육에 대한 현재 사회상을 잠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그 첫번째로 ‘차별과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우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환경도 볼 줄 알아야하니까요.
1985년 1.3배였던 비율이 2000년 16.8배까지 늘어났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2007년 서울대 신입생을 40퍼센트가 소득수준 상위 10%에 포함되었다. 상위 20%까지 계산하면 61.4%로 나타났다.
예전 신문에 나왔던 이야기랍니다.
교육양극화 비판이 쏟아지자 2007년 6월 교육부는 저소득층 가정 자녀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정원 외 특별전형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균등할당제’를 도입 발표하였죠. 그러니까 균등할당제는 성적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지역별로 얼마의 학생을 서울의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주는 것이 그 취지이죠. 처음에는 취지는 좋았지만 상황이 어찌 변했을까요? 지방의 대학만 더 상황을 안 좋게 만드는 결과만 나왔답니다. 뽑을 학생을 뺏겼으니까요.
또한 수시모집으로 이런 현상도 발생되었죠. 특정고등학교 이른바 명문특목고의 학생을 명문대학에서 더욱 손쉽게 뽑을 수 있는 결과만을 나았지요. 그러다보니, 고려대학교에서 외고의 입시문제가 작년에 터졌고, 일반고에서 명문대학을 들어갈 수 있는 기회자체가 줄어든 것이랍니다. 모르긴 몰라도 연고대를 중심으로 한 명문사립대에서 각 외고와 과학고를 다니면서 지원만 하면 입학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을 겁니다. 그러니, 일반고에서 들어갈 자리가 줄어들게 되고 학생들은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자세히 보면 일반고의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이것이 차별이겠지만, 특목고학생이나 대학에서는 이것을 ‘차별’이 아닌 학생의 ‘차이’라 생각한답니다. 누가 어찌 보느냐에 따라서 ‘차별’도 되고 ‘차이’도 된답니다. 이렇다 보니, 부모들이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일수 밖에요.
사교육을 받는 목적은 단순하죠. 국제중이나 특목고나 모두 좋은 대학에 가기위함입니다. 치열한 경쟁은 학부모나 아이들 스스로 만들고 또한 원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서울대에 좋은 교수님이 있어서 서울대가 아니라, 좋은 학생들이 있어 서울대라는 얘기가 있듯이, 학생들이 특목고로 몰리는 이유도 특목고 선생이 좋아서가 아니라 좋은 학생들이 많기에 경쟁할 수 있어서이다. 지난번 이야기한 공기중에 지식과도 관련있는 이야기지요.
공교육이 무너진 이유는 아주 간단하답니다. 정부가 어쩌니 사회가 어쩌니 해도 학생과 학부모 스스로가 이렇게 만든 것이랍니다. 사설학원의 경쟁력은 ‘경쟁’에서 오죠. 사설학원 앞에서 ‘경쟁’만을 빼고 공교육을 얘기하자는데 설땅이 있을리가요.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효율적이고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는 한, 사교육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답니다. 이것을 정부나 공교육 담당자들이 만들었을까요?
현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교등급제를 도입해서 고교끼리 경쟁시키고 지방에 자립형 사립고를 대폭 늘력 학교들이 차별적이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경쟁에 나서게 해야하죠. 그래야 과학고, 외고, 예술고도 그 취지에 맞는 전문 기능을 되찾고, 비 강남권도 희망이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잠시 현실은 어떤가를 논하기 전에 과거에 어떠하였는지를 한번 볼까요?
우리가 아는 정운찬 서울대총장, 이성태 한국은행총재 등은 어렸을 적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죠. 정총장의 어머니는 고려대학 의대 병원자리에 있던 옛 수도병원에서 침대보를 빠는 막노동을 하면서 정 총장 남매를 키웠고, 이성태 총재는 할아버지 손에서 크면서 부산상고를 다닐 때 리어카를 몰고 직접 돈을 벌어가면서 고등학교를 마친 사람입니다. 모두가 경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승리한 사람들이고, 이들이 공부하던 시기는 현재와는 다르죠. 현재의 3불정책은 ‘개천에서 용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상황이고, 이분들은 3불정책이 없었기에 현재의 그분들이 가능하였죠. 지금이야 부모의 재력과 관심이 아이의 성적으로 연결되고, 그렇게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다시 특목고등으로 집합을 형성하고 있죠.
즉, 3불정책은 개천에서 용이날수 있는 토양자체를 없애는 것이랍니다. 모든 것을 평등, 평준화 하라 주장하기 때문이죠. 기업의 입장에서 보게되면 사장과 임원 그리고 직급별로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구성원들이 같은 직급과 급여를 받는 것을 말하죠.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다른 문제랍니다. 100만 수험생 부모 가운데 자기 자식을 실력으로 명문대에 보낼 수 있는 부모는 10만 명이 채 안되겠죠. 자기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지 못하는 나머지 90만 명의 부모는 그럴 바에는 명문대를 없애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세상에는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고, 그들 표가 다음 대통령 선거를 이끈다는 것이 현실인데, 감히 어느 누가 책임지고 바꿀 수 있을까요?
바로 표심이라는 것이 100년지 대계인 교육도 바꾸는 것이랍니다.
재미있죠?
현재의 국제중이나 자립형 사립고의 이야기도 정권의 초반이기에 가능한 것이랍니다. 만일 이것이 선거일과 비슷한 시기에 맞물리면 찬성하는 여당은 절대로 나타날 수 없는 것이죠.
무엇이 보이시나요?
분명 무한한 경쟁에서 살아가야 할 미래에는 분명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특별한 집단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얻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잃는 것은 있기 마련입니다. 특성화되고 특별화되는 중/고교입시의 변화는 경쟁을 위한 우수인자를 뽑아내고 육성할 수는 있어도, 그곳에서 소외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기대는 무너트릴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현실이죠.
부모의 입장은 같답니다. 그 누구나 자식 안 예쁜 부모는 없죠. 그래서 그것이 아무리 ‘차이’일지라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차별’이라 주장하는 것이 바로 자연스런 부모의 마음입니다.
똑 같은 두아이가 있는데, 한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를 가고, 다른 아이는 지방대를 갔죠. 그리고 졸업후 서울대 나온 친구는 월급을 많이 받고 지방대 나온 친구는 그보다 적게 받았습니다. 차별일까요? 차이일까요? 차이라 보여지죠?
두 아이가 공부를 똑같이 열심히 하는데, 한 아이는 고액사교육을 받고 한 아이는 부모님이 경제적 여유가 크지 않아서 서울의 중상위권대학을 갔지만 서울대는 못 갔답니다. 차별일까요? 차이일까요?
차이이건 차별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아이들이 교육에 대하여 차별받을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지만, 실은 아이들의 차별이 아니라 바로 부모의 차이에서 출발한 다는 것은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아셔야 할 듯 하네요.
문제는 돈인데, 모든 사회구성원이 아이들이 차별 받지 아니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더 주고, 그에 필요한 세수를 더 부담하자고 하면 아마도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겠죠?
정치인만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이런 분위기의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듯 보여지네요.
어차피 한국이라는 나라가 다른 나라와 경쟁하고 살아남으려면 모든 것을 ‘평등’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차이와 차별’의 차이겠지요. 교육에서 경쟁은 효율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형평’에도 기여한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하면 알테니까요. 하지만 이는 이론적인 것이죠.
어떤 엄마도 우리아이가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단 한사람도 없답니다. 사교육을 더 못시켜서 아니면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성적이 당장 안나오는 것이라 생각하죠.
정보통신이 발달할수록 세상은 평평해지는 듯 보이지만 실은 평평해지지 않답니다. 그럴수록 세상은 뾰족해지죠. 과거와 비교했을 때 특정집단의 수입이 하위계층과 비교하여 확연히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예이겠죠. 앞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더 커진답니다. 법률시장이 서초동에 모이고 특허 성형은 강남, 자동자 선반등 모두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다. 바로 수요가있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의 곳에 정보와 먹거리는 모이는 것이죠.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메일 전화 휴대폰 화상통화가 발전된다면 비행기로의 출장이나 차로의 출장은 없어져야 하지만 참 이상스럽게도 출장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죠.
미래의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을 예상할 것까지 필요 없는 듯 하네요. 현재의 대학생들도 열에 아홉이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받아 자신이 남들과 차이가 있고 차별화 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인데, 엄마들은 그것을 인정하기 힘든 것뿐이랍니다.
다음번에는 여기에 가장 많이 오시는 30,40대의 엄마가 어린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는데 힘을 줄 수 있는 언행에 대하여 이야기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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