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신도시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권 때로 기억됩니다. 물론 박 대통령 때에도 신도시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지만 계획 도시로 경남 창원이나 호주의 캔버라 시를 모델로 삼은 안산시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신도시라는 개념은 계획도시를 의미합니다. 이 글을 통해서 계획 도시가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모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990년대 초반 신도시의 등장은 우리나라 주택 정책에 큰 획을 그을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군사 정권다운 '간단 명료'한 정책으로 80년대 후반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던 집값을 일거에 잠재운 정책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공급의 확대죠.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 원리를 이길 어떤 원리도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기도 했고, 80년대 강남 신화가 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시원스러운 차선, 집 근처에서 걸어서 갈수 있는 많은 공원, 대형 쇼핑 센터의 싸고 다양한 상품이 눈길을 끌었고, 고학력 부모를 가진 자녀끼리의 적정한 경쟁은 우리들의 아이를 좋은 대학으로 이끌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많은 분들이 다시 강남으로 회귀하고 있으며, 이것이 2001년 이후 강남 집값을 끌어 올린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기존의 신도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일언반구 없이 다시 신도시를 2~3개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발표를 보면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기존의 신도시 정책이 실패했다고 자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혹시 90년대 초와 같이 물량 위주의 공급으로 지금의 현상을 타파할 수 있다고 보는지도 모릅니다.
신도시가 한창 건설되던 80년대 후반의 주택보급율이 71%였던데에 비하여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02년도 기준으로 주택 보급 율은 100%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건설 행정 역사상 중요한 한해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파주 및 김포등에 신도시를 또 건설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정부의 고민일까요? 과연 건설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그런 것일까요?
문제는 주택 보급율 100%라는 숫자의 허상에 있습니다. 이 수치는 우리나라 전체의 숫자입니다. 아직도 서울 및 수도권의 보급율은 80% 내외에 불과합니다. 물론 오피스텔등이 주택에 분류되지 않아서 통계에 오류가 있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역시 마찬가지 논리로 주민등록을 분리하지 않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일인 가구(집안이 지방인 직장인등)가 많기 때문에 이 두 수치는 상계될 것 같습니다. 그럼으로 정부에서 보는 통계치에 큰 오류가 없다고 보니다.
또 다른 관점은 주거의 질에 대한 문제입니다. 올해 3월 23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체 가구수 총 1천431만여가구중 의 23.1%에 달하는 330여만 가구는 여전히 정부가 정한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고 있다 합니다. 건설교통부가 정한 최저 주거 기준은 ’침실기준’으로 부부 침실 확보, 만 5세 초과 자녀 침실과 부부 침실 분리, 만 8세 이상 이성 자녀의 침실분리, 노부모 침실 분리등을 정하고 있습니다. 침실기준과 함께 ’상수도 또는 수질이 양호한 지하수 이용시설이 완비된 전용부엌 및 전용 화장실확보’조건을 최저주거기준중 ’시설기준’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외에 4인가족 기준으로 11.2평의 주거면적확보를 최저주거기준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수치도 전국 통계치입니다. 서울 및 수도권은 지방보다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태일것으로 보이므로 수도권의 경우는 정부에서 발표한 23.1%까지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수치는 차치하고서라도 지금은 수요자의 눈도 많이 높아져 있고,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기대치도 높아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에 부응하는 신규 공급이 적었기 때문에 그나마 기대치에 제일 부응하는 인기지역으로 모두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여러 방법이 있을수 있지만 신도시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도시에 대해서도 두가지 방법이 있을수 있는데, 첫째가 기존의 신도시의 기능을 강화하여 수요를 분산 시키는 방법이고, 둘째가 추가로 신도시를 건설하는 방법이죠. 이 번 글에서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묶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즉, 지금의 신도시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고, 새로 건설하려는 이상적인 도시의 조건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교육입니다.
한국에서의 교육이라는 코드와 주거를 떼어 놓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해서는 지난주에 “8학군과 강남집값”이라는 주제에서 충분히 논의하였으므로 별도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지난주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교육 환경은 단순간에 좋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도시가 성공하려면 씨는 뿌려야 합니다. 씨가 일단 싹트면 스스로의 유인효과에 의해 교육환경은 저절로 좋아지게 됩니다.
두 번째가 교통 문제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기능을 갖추고 직장도 도시 내에 있는 신도시가 좋겠지요. 하지만 모든 경제의 중심이 서울에 집중화 되어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이상론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베드 타운(bed town)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중요한 문제가 교통입니다. (지금의 용인 수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기도 하지요.) 신도시 준공에 앞서 전철과 전용 고속도로를 개통을 하여야 합니다. 전용 고속도로는 무료와 유료 도로 두개를 만드는 것도 좋겠지요. 두 도로가 완행과 급행의 역할을 하게 될 테니까요. 예산의 최소 50% 이상은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신도시에 부담시키는 것도 좋겠습니다.
세 번째가 환경입니다.
삶이 풍요로워질수록 환경에 대한 욕구는 커집니다. 자연 자체를 보존하느냐 사람의 접근성을 좋게 개발하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두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신도시 외곽은 그린벨트로 묶고, 내부는 공원 등 녹지 지역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분당 등 현 신도시는 그리 나쁜 편은 아닙니다.
상상을 해보십시오. 맑게 갠 토요일 오후, 집에서 가까운 공원 자그마한 호수위에는 오리떼들이 헤엄치고, 아내는 화폭에 그림을 담고 있고, 당신은 그 옆 놀이터에서 장난치는 아이들과 아내를 번갈아 보면서, 나무 그늘아래서 책을 볼수도 있고, 오월의 따스한 햇살을 즐기면서 어릴적 놀던 동산의 꿈을 꿀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출퇴근의 번잡함도 없고 상사의 잔소리도 없습니다. 진정한 휴식을 줄수 있는 곳이 당신 집 앞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곳이 우리가 원하는 신도시가 아닐런지요.
그러나 환경에는 자연환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 환경이 있으며, 이것이 집값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현재 신도시 사시는 분들은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지난 몇 년간 얼마나 많은 유흥업소와 러브 호텔이 신도시 내로 들어 왔는가를... 심지어 서울에 사시는 분 조차 술을 마실 때는 신도시로 간다는 말까지도 들었습니다. 조금 과격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이를 위해 술집, 러브 호텔등 유흥 업소는 신도시에 허용해서는 않는 것이 좋습니다.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을 펴는 것은 아니고 미국의 몇몇 신도시가 그러한 정책을 펴서 성공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주부가 살고 싶어하는 도시 중 1위를 차지하였고,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13위를 차지한 신도시가 캘리포니아 내에 있는데 그러한 정책을 펴는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신도시를 세울 때 이러한 제한 사안을 공표하거나 행정 기관에서 허가를 내주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시의회에서 적극적 활동을 하여야 합니다. 시 자체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시민의 대표가 당연히 참여하여야 합니다. 반대로 인위적 환경에서도 병원, 도서관, 문화 시설등 각종 편의 시설에 대한 계획 입안에도 시민이 참여할수 있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지방자치제의 확립입니다.
신도시는 신도시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도시에 나오는 지방세는 모두 그 도시를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이래야 도시 환경이나 교육 환경의 개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XX시 YY구의 형태를 띄고 있는 한 신도시로의 이주는 매력을 주지 못합니다. YY구에서 거둔 지방세는 모두 YY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XX시 구시가지 개선을 위해 자신들의 세금이 사용되는 것은 신도시의 발전을 저해합니다. 어떤 분들은 위화감 조성 등을 말씀하시겠지만, 이것이 현 신도시들의 실패(?) 원인 중 하나입니다. 구시가지 개선은 국세의 지원을 받아서 해야 할 분야입니다. 신도시를 하나의 독립된 시로 만들 때 지방자치제 확립이라는 명분도 살수가 있습니다.
다섯번째는 신도시 자체의 정체성 확립입니다.
A라는 도시하면은 어떤 이미지가 떠 오를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더 이상 정치 논리로 '짬뽕'도시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임대 주택을 몇% 만들어야 하고, 소형 평수 주택을 몇% 이상하여야 하고... 이런 것들이 신도시의 발전을 막는 정부의 간섭입니다. 신도시를 3개쯤 건설한다니까, 그 중 A라는 고급 신도시, B라는 도시는 젊은 샐러리맨, C라는 도시는 서민을 위한 도시 이렇게 만들어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하여 A라는 도시에 분양가가 평당 2천만원이 되던, 투기가 벌어지던 정부는 상관하지 마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만의 도시가 될 터이니까요. 그저 세금만 거두고,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는가만 감시하면 됩니다. 정부에서는 재정 자립도가 적은 C라는 도시에 보다 국세를 투자를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신도시 자체로만 보면 이상적일지 는 모르겠지만, (현재도 강남을 곱게 보지 않는 정서가 있듯이) 지역별, 소득 계층별 위화감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직접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몫은 민간에게 넘기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다음주에 올릴 “후분양제 폭풍”이라는 글에서도 언급되겠지만 우리 나라 건설사는 향후 두 그룹으로 나뉘어 질 것입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프로젝트성 대단위 건설을 할 수 있는 업체와 이들 업체나 리츠사 밑에서 하청 또는 도급을 받아서 일을 하는 업체로 양분될 것입니다. 도곡동의 삼성 타워팰리스는 위로 뻗어 올라간 하나의 작은 도시입니다. 그러나 부의 상징으로서 타워팰리스는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도시로서는 한계가 많습니다. 가장 큰 약점이 자연 환경의 결여. 조망권만 가지고는 부족하지요.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자연이 그곳에 부족하기 때문에 진짜 도시 건설에 대한 꿈이 몇몇 대기업에게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일인당 소득이 2~3만불 정도가 되는 10년 후라면 이러한 것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도시의 컨셉을 잡는 것부터 시작하여, 도로 건설 등 인프라 구축에서부터 주택 건설까지를 민간 업체에서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 인구 5~10만 위주의 소규모가 되겠지요.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 몇일 후에 있을 잔치 이야기하는 것 같아 현실감이 없겠지만 주거의 질에 대해서 누군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부터는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주거 문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80년대 말에 기획되고 90년대 초에 공급이 된 분당 등 신도시는 양적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어떻게 도시를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이 적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질적 향상을 원하는 시대 상황에 부응 시키기 위해서는 위의 5가지 항목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앞으로 세워질 신도시도 이러한 기준 하에 세워져야 합니다.
부동산뱅크 회원 여러분들의 관심 사항이기도 한 투자 측면으로 돌아와서 한 말씀 드리면, 우리 정부가 위에서 열거한 측면을 고려한 신도시를 만들 능력과 의지가 있고, 그걸 감시할 우리 국민의 수준이 충분히 높다고 믿으시는 실수요자 또는 투자가 분들은 좀 더 기다렸다가 신도시에 투자를 하십시오. 이때 위의 조건과 가장 비슷한 곳을 고르시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하신다면 강남이나 위의 조건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는 기존의 신도시를 고르시는 것이 안전하겠지요.)
신도시의 선택은 아파트의 선택과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5개의 신도시가 생기면서 분양가는 비슷하게 출발했지만 지금은 평균 집 값에서 차이가 나듯이 앞으로 세워 질 신도시간에도 반드시 평균 집값에서 차이도 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얼마나 위의 기준에 적합하냐에 따라 기존의 신도시의 집값과의 차별화도 진행될 것입니다.
작은 생각의 시작이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작은 선택이 큰 차이를 만듭니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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