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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글모음/아기곰님 글모음

후분양제 폭풍(2003/04/20)

by 크레도스 2011. 10. 25.

최근 아파트 선시공 후분양제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작년 이후 가끔 거론되던 이 논의가 지난 3월말 노 대통령의 검토 지시로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선시공 후분양제의 장단점을 수요자 및 공급자 관점에서 살펴보고, 이 제도의 도입이 어떻게 경제 시스템을 변화 시킬 것인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전반적으로 이 제도의 도입을 환영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의 부동산뱅크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 이상이 후분양제 도입을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많은 수요자가 왜 이렇게 이 제도의 도입을 환영할까요?

첫번째 이유는 재정적 위험(financial risk)의 감소라고 봅니다.
현재의 주택 선분양 제도하에서는 집값의 최대 80%까지 수천만원 또는 수 억원의 돈을 계약금 또는 중도금으로 선납을 하고 아파트가 완공되어 입주할 때 까지 마음을 졸여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대한주택보증 주식회사가 분양 보증을 서도록 함으로써 건설사의 부도 등으로 인한 수요자의 직접적 피해를 막기는 하지만 입주 지연 및 이로 인한 금융 비용의 증가, 그리고 마음 고생은 수요자의 몫이었습니다.
수요자의 입장에서 후분양제 하에서는 실물과 돈을 맞교환하기 때문에 약 2~3년 정도의 건설 과정 기간 동안의 맘 고생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좋은 집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입니다.
모델하우스만 보고 계약하는 현재의 제도하에서는 입주 시 기대할 수 있는 품질의 최고 수준은 아마도 모델하우스 수준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델하우스 수준 정도로만 지어 놓으면 건설사의 입장에서는 계약 위반이 아니므로 건설사는 ‘양심과 경제적 이익’ 사이를 매일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품질 향상에 대해 무한 경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품질을 올리기 위해서 반드시 비용도 따라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자재, 공법, 노동의 질 등이 품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같은 재료를 쓰고도 얼마든지 품질은 올릴 수가 있습니다.
품질에 대한 논란이 있을 경우 바로 분양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에 건설업체 마다 품질에 사운을 걸 것입니다.
품질 뿐만이 아닙니다. 조망권 등 주변 환경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치를 가지고 계약을 했는데, 막상 입주시에는 다른 건물이 들어서서 조망권이 없어지거나 일조권이 침해되거나 하여 처음 기대치에 많이 모자라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것들이 수요자가 부담해야 하는 위험이었습니다만 후분양제에서는 확실한 옥석을 가릴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인테리어에 대한 비용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의 분양가에는 당연히 인테리어 비용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입주 시에 멀쩡한 내장재를 뜯어 내고 새로이 인테리어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건설사에서 제공하는 인테리어의 수준이 2~3년 전 분양 시에 모델 하우스의 수준을 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입주할 새 집의 인테리어가 최근에 분양하는 모델하우스에서 보여주는 최신 감각의 인테리어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획일화 된 인테리어에서 벗어나 나만의 개성을 찾을 수 있는 인테리어를 추구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후분양제가 실시되면 이러한 이중 투자가 많이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수요자에게 분양되는 시점은 내벽 공사 등이 마무리되고 인테리어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분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건설사에서는 두 세 개의 샘플 하우스를 실제 아파트에 만들어 놓고 수요자에게 선택권을 넘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건설사가 제안하는 최신의 인테리어중 하나를 고를 수도 있고, 전문 인테리어 업체에 맡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후분양제가 수요자에게 이익만을 가져 다 줄까요?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후분양제에도 반대 급부가 있습니다.
첫번째 분양가가 인상 될 것입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건설사의 차입 금리 만큼의 분양가 인상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지금의 선분양 제도하에서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자기 돈으로 분양 받는 수요자의 경우 예대금리의 차는 손해 볼 수 있습니다.

금리차 이외에도 분양가 인상 요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일종의 위험 관리 비용(Risk management Cost)이 분양가에 붙을 것입니다.
선분양제에서 분양에 대한 리스크는 결국 수요자에게 돌아가지만, 후분양제는 고스란히 건설사의 몫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건설사 입장에서는 원가 책정 시에 이를 반영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A지역과 B지역 두 군데에 짓는 아파트의 건설 원가가 90원이고 이윤이 10원이라 할 때 선분양제에서는 분양가를 100원으로 책정합니다.
그러나 후분양제하에서 이렇게 원가 구조를 가져가면 건설사는 망합니다.
그 이유는 A지역은 쉽게 분양되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데, 이에 비해 B지역이 분양이 안되었다면 그 회사는 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분양제 하에서 원가를 책정할 때는 분양에 자신 있는 A지역이나 로열층의 경우 100원이 아니라 110원으로 분양가를 책정을 할 것이고, B지역 또는 비로열층은 100원 또는 그 보다 약간 아래로 분양가를 책정했다가 분양이 되면 업체 이익이 되는 것이고 미분양 되면 실 원가인 90원까지 할인을 하여 분양을 할 것입니다.
이미 건설사 입장에서는 A지역에서 20원의 이익을 취했으므로 B지역에서 분양이 저조하더라도 할인해서 분양할 여력이 있는 것입니다.

후분양제가 수요자에게 미칠 두 번째 문제점은 저축 효과의 감소입니다.
선분양제에서는 때에 맞추어 중도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그것에 맞추려고 허리 끈을 동여 맵니다.
일종의 강제 저축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후분양제가 실시되면 수요자의 성향에 따라 여러 현상이 벌어질 것입니다.
재테크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건설사의 차입 금리 보다도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으므로 후분양제가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재테크에 재주가 없고 게다가 마음까지 모질지 못한 사람에게는 후분양제가 내 집 마련을 멀게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상으로 후분양제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 수요자의 측면에서 살펴 보았고 이제부터는 공급자의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공급업체에 미칠 영향은 한마디로 “업체간 차별화가 시작된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업체간에 차별화를 만드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자금 동원 (financing) 능력과 둘째는 품질 및 마케팅 능력입니다.

“선분양제냐, 후분양제냐?”라는 논의의 핵심은 “건설 기간의 자금을 누가 제공하는가?” 입니다.
선분양제는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수요자가 그 자금을 대는 것이고 후분양제는 그 자금을 업체가 대는 것입니다.
생명보험사 등 튼튼한 자금 줄을 끼고 있는 재벌계 대기업의 경우 자금 동원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 보입니다.
그러나 중소 건설업체의 경우 자체 자금 동원 (financing) 능력이나 자산 담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들 업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자체 브랜드 사업을 포기하고 대기업 건설사의 하청 회사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리츠 (REITs)사의 도급을 받아 건설만 해주는 전문 용역업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공급자 중심의 시장입니다.
영어도 아니고 우리 말도 아닌 국적불명의 브랜드를 대충 하나 지어 놓고, 탤런트 한명 단발성 계약을 하여 사진 찍어서 분양 광고를 내어도 분양에 지장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후분양제로 넘어가게 되면 시장은 수요자 중심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재벌계 대기업들은 원래 소비재부터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마케팅에 대한 노하우나 우수 인력을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시장 조사를 통하여 소비자의 욕구를 그때 그때 파악하여 경쟁력 있는 아파트를 짓거나 때로는 매스미디어를 동원하여 소비자의 욕구를 리드해 나갈 것입니다.
여기에 비해 평생을 건축 현장에서 지내온 중소 건설사는 마케팅에서 기본적으로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자금 동원 능력과 마케팅 능력의 차이때문에 후분양제가 실시되면 중소 건설업체는 대규모 아파트 시장에서는 자체 브랜드를 접어야 할 시점에 놓이게 됩니다.
중소 업체는 빌라나 고급 주택 등 차별화된 시장에서 전문성을 살려야 살아 남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후분양제가 금융 등 경제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제 네 번째 글 “모기지 론 제도 도입이 주택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후분양제 도입을 계기로 모기지 론 (장기 주택 저당 대출) 제도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후분양제에서는 분양을 받을 때 목돈이 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둘째, 리츠(REITs) 제도가 활성화 될 것입니다.
‘리츠 (REITs ;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란 다수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유가 증권(주식)을 발행하여 자금을 모집한 후, 부동산에 직접 투자하거나 부동산 관련 유가 증권에 투자하는 간접 투자 상품의 일종이라 하겠습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소액 투자자를 모집하여 빌딩 등 대규모 부동산에 투자하여 얻은 수익을 나누는 것이 리츠라고 보시면 됩니다.
선분양제에서는 건설사가 직접 수요자로부터 건설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에 리츠사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분양제가 실시되면 리츠사가 아파트 분양 시장에 적극 개입할 것입니다.
아파트 분양의 이익을 투자자에게 분배하는 형태가 될 것이며, 만약 미분양이 발생시 리츠사는 미분양 아파트로 임대 사업을 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 법인도 주택 임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사업이 활성화될 전망입니다.
중소 건설업체는 리츠사와 컨소시엄 (Consortium)을 구성하거나 도급 형태로 살아 남을 것입니다.
(담보 능력이 있는 대기업은 은행의 부동산 신탁 자금을 끌어 들일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분양권 거래는 거의 없어질 것입니다.
선분양 제도 하에서의 분양은 일종의 복권 당첨과 같습니다.
좋은 단지, 로열층에 당첨이 되면 그 자리에서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이 분양권 거래를 재테크의 하나의 장르로 만들었고, 이에 따라 많은 가수요가 생겼습니다.
후분양제에서는 어떨까요?
바로 실수요자에게 바로 분양되기 때문에 프리미엄이라는 개념이 없어집니다.

넷째, 재테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질 것입니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아파트 완공 시 분양 대금을 완납하면 되므로 수요자 입장에서는 그 기간 동안에 자금을 운영할 여력이 생깁니다.
은행 예금 보다 수익성 있는 재테크 상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증권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기존 주택 시장에는 영향을 미칠까요?
일부 건설사에서는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당분간 공급 물량이 없어 기존 주택 값이 들썩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선분양제와 후분양제의 차이는 분양 시점에 있으며 실제 아파트가 실수요자에게 공급되는 시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급 부족 사태로 인한 기존 주택 값 상승 효과는 적을 것입니다.
다만 분양 대기 자금의 일부가 주식 시장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존 주택 시장으로 갈수 있기 때문에 그 만큼의 상승 효과만이 있을 것입니다.

이상으로 선시공 후분양제가 수요자에게 미치는 영향, 공급자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경제 시스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후분양제는 자본주의 경제원리를 따르는 좋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기대는 마십시오.
후분양제 자체가 ‘우리에게 좋은 아파트를 싸게 제공’해주는 것을 약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후분양제는 ‘우리에게 좋은 아파트를 안전하게 제공’해주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후분양제 도입으로 인한 가장 큰 경제적 효과는 각 건설사가 분양을 위해서 (즉, 살아 남기 위해서) 품질에 최선을 다하고 불필요한 경비를 줄여 강화된 자체 경쟁력에 있습니다. 그 열매는 수요자의 몫으로 돌아 올 것입니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