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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글모음/아기곰님 글모음

부동산 세제 개혁과 집값(2003/04/30)

by 크레도스 2011. 10. 25.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부동산 정책이 바뀌면서 논란이 많은 것이 세제 개편 문제입니다.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세제 개편 논의가 따를 것입니다.
과거의 예를 보면 세무 당국에서는 보유세 인상에 대한 논리가 박약하자, "미국 등 선진국 같이 보유세를 강화하고.."라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과연 이 논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먹고 사는 물가는 참 쌉니다.
단위가 다르지만 한국식으로 환산하면 휘발유가 1리터에 500원 미만, 쇠고기가 한 근에 4000원 미만, 쌀이 Kg당 1천원 정도... 맛도 좋습니다.
그러면 미국 사람들은 모두 풍요롭게 잘 사는가?
아닙니다.
은행 잔고가 1만불 (천이백만원)이 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달 그 달 살아 갑니다.
가장 큰 원인이 집값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수입의 1/3 이상(40% 정도)을 집세로 내고 있습니다. (생활비의 1/3이 아님.)
참고로 지역 마다 다르겠지만 캘리포니아의 중류층 정도가 사는 도시의 방3개 짜리 월세가 월 240만원 정도 합니다.
한마디로 집 값 내기에 헉헉대고 있습니다.

그러면 집주인은 떼돈을 버느냐?
아닙니다.
집을 사느라고 은행에서 빌린 돈 (모기지 페이먼트) 지불하고 정부에 세금 내고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미국에서의 보유세는 집 시가의 1~2% 정도입니다.
40만 불의 집이라면 일년에 4~8천불의 세금을 부담합니다. (우리 돈으로는 480만원~960만원 정도)
현재 한국의 재산세보다는 20~30배 정도죠.
물론 납부한 세금에 대해서는 소득세 공제를 해줍니다.
문제는 이 재산세가 그대로 세입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도 보유세가 강화된다면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리라고 봅니다.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분들은 그 부담을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할 것이고 결국은 집 한 채 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만 또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집이 없어 전세나 월세를 사시는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전세나 월세가 오르는 것이죠.
그러므로 "보유세를 올리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논리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보아도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지금도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집값은 금리나 수요/공급, 거시 경제 전망 등 여러 가지 영향을 받지만 보유세와는 상관 관계가 적습니다.

공급자의 입장에서 보면 콜라에 대한 세금이 올라가면 콜라의 원가가 오르게 되어 콜라의 소비자가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논리에 수긍이 쉽게 가지 않으신 독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콜라 값이 오르면, 그 대체제인 사이다나 오렌지 주스를 사먹지.”
그렇습니다.
이 부분에 착안하면 보유세로 집값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하면 세제 개편을 통하여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요?
모든 집에 대한 보유세 인상은 미국의 예와 같이 시장 가격에 바로 반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의 시저가 한 것과 같이 “분할 및 정복 (divide and conquer)” 전략을 써야 합니다.
즉,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 가구부터 시작해서 보유세 중과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들은 1가구 1주택에 비해 수가 아주 적기 때문에 이 가구들에 중과를 한다 하더라도 전체 시장 가격에는 반영되기 어렵습니다.
세금이 오르면 집값이나 전세 값에 반영하고 싶지만 대부분의 가구는 영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단계가 1가구 2주택 가구에 대한 중과세를 도입하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주택 시장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고 보유세를 올릴 수가 있습니다.
물론 보유세를 올리는 것이 목적은 아니죠.
그러나 다 주택 보유 가구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가 함으로서 1가구 1주택자가 다가구 주택자가 되고픈 유혹을 차단하고 부수적으로 매물 출현을 통한 시장 가격 안정을 꾀할 수 있습니다.

이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는 보유세(재산세)가 국세가 아니라 지방세라는 점입니다.
이 의미는 주민의 민의를 살펴야 하는 지방 자치 단체로서는 과감한 보유세 인상에 반대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작년 말 강남 3구가 보유세 인상에 반대했던 이유입니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보유세를 인상하면 지방 자치 단체의 수입이 좋아져서 그 지역에 더 투자를 하고, 그 것이 집값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보유세를 인상한다면 기존의 재산세를 손질하는 것 보다는 인상분에 대해서는 특수목적세 형태로 국세로 신설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여기서 얻어지는 수익으로 임대 주택이나 저소득층 불량주택 개선 사업에 활용된다면 사회 통합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것입니다.

두 번째 고려 사항은 양도세 인하입니다.
부동산 세제 개편의 핵심은 세수의 확대가 아니라 주택 가격 안정에 있습니다.
이것만 정부에서 잊지 않으면 문제는 아주 쉽습니다.
작년에 부동산 대책이라고 나왔던 “팔구 사구” 대책은 혹평을 하자면 “너만 먹냐? 나도 먹자.”라고 밖에 볼 수 없던 대책입니다.
(8월 9일과 9월 4일에 발표되었던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을 날짜를 따서 팔구 사구 대책이라고 부릅니다.)
기존 집을 많이 팔게 하여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게 해야 집값이 떨어질 텐데 반대로 양도소득세를 올리면 매물이 사라지게 됩니다.
실수요는 언제나 일정 수요가 있기 때문에 가격은 떨어질 수가 없는 메커니즘에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세수 확대가 아니라 뛰는 부동산을 잡으려고 했다면 반대의 대책을 썼어야 합니다.

여기서 양도소득세의 메커니즘을 살펴보겠습니다.
양도소득세는 말 그대로 어떤 재화를 양도할 때 생기는 차익에 대해 과세하는 제도입니다.
소위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라는 말에 가장 맞는 세금의 종류 입니다.
그러나 양도소득세의 탄생 배경에는 부동산 투기 방지라는 대 전제가 있었습니다.
소위 샀다 팔았다 하는 투기 행위에 대해 철퇴를 가하고 부동산 장기 보유를 유도하자는 것이 양도소득세의 존립 목적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취지가 퇴색한 채 세수 확보 목적으로만 활용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일가구 다주택 보유자가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양도세입니다.
그것 때문에 못 팔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가구 일주택 보유자가 한시적으로 2주택을 소유하게되고 어떤 이유로 양도소득세 면세 기간인 1년을 넘기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아주 안 팔게되는 것입니다.
“거액의 양도소득세를 내느니 그냥 보유하고 있다가 더 오르면 다행이고, 안오르면 아들 장가갈 때 주지 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번 2주택 보유자가 되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입니다.
하나라도 파는 순간 양도세를 내야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팔지는 않고 주택을 더 사게되어 3주택, 4주택자가 되는 것입니다.

양도소득세의 또 하나의 모순점은 장기 보유자에게 절대로 불리한 제도라는 점입니다.
조금 아신다는 분은 이 대목에서 지적하실 것입니다.
“무슨 소리야? 장기 보유자를 위해서 장기 보유 특별 공제를 해주는데….”
맞습니다.
3년 이상 보유 시에는 10%, 5년 이상 보유 시에는 15%, 그리고 10년 이상 보유 시에는 30%를 과세 표준에서 공제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준 시가 인상률이 장기 보유 특별 공제 폭 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장기 보유할수록 세액이 커지는 것은 물론 담세율도 커지는 모순이 있습니다.
몇 군데 샘플로 양도 소득세를 계산해 보겠습니다.
30평형대인 강남 대치동의 E아파트, 분당 서현동의 H아파트, 노원구 상계동의 M 아파트를 계산해 보면,
강남 E 아파트를 작년 초에 사서 지금 팔게 되면 4200만원 정도의 양도소득세 및 주민세를 내게 됩니다.
반면 8년 전 1995년도 초에 이 아파트를 산 사람이 지금 팔게 되면 5600만원의 세금을 내게 됩니다.
장기보유자가 1400만원 정도 세금을 더 내는 것입니다.
분당 서현동의 H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년 정도의 단기 보유자가 내야할 세금이 1300만원 정도인데 8년 장기보유자가 내야할 세금은 2300만원입니다.
상계동 M 아파트도 단기 보유자는 70만원 장기 아파트 소유자는 410만원을 내게 됩니다.
모든 공제 후 실제로 내야 할 세금을 양도차액으로 나눈 담세율을 비교하더라도 장기 보유가 불리합니다.
E아파트 경우는 작년에 두 번의 기준시가 인상으로 단기 차액에 대한 담세율이 약간 높습니다.
그러나 분당 H아파트의 경우는 단기가 19%의 세금을 내는데 비해 장기는 20%의 세금을 내고있습니다.
상계동 M 아파트는 왜곡 현상이 더욱 심하여 단기가 7%의 세금을 내는데 불구하고 장기 보유 시에는 11%의 세금을 내게 됩니다.

양도소득세의 근본 취지가 단기 투기를 방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행의 양도소득세 운영은 취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기 보유하면 양도세를 중과하니까, 샀다 팔았다 하세요. 그러면 세수가 증대되어 나라 재정이 튼튼해 집니다.”
이것이 현행 양도소득세법이 담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투기성의 단기 차익과 보유성의 장기 차익은 그 성격을 달리하며, 그에 대한 과세 기준도 달라야 합니다.

이상으로 부동산 관련 세제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국토는 너무 좁습니다.
게다가 70% 이상이 산지입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곳도 한정된 데다 그나마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 반이 몰려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유의 불균형까지 가세된다면 계층간 불화의 골은 깊어 갈 것입니다.
지금은 주택 자가 보유율(住宅 自家 保有率) 을 높여야 할 때입니다.
즉, 모든 가구가 자기 집을 갖을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은 ‘규제와 단속’이 아닙니다.
일부 계층이 아닌 전 국민의 합의 (consensus)를 모아서 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그 중 가장 강력한 도구가 세제 개편입니다.
정부의 의지를 지켜 볼 때입니다.

P.S)
이 글을 완성하고 난 후인 4월 16일 정부에서 부동산 세제 개편 방향에 대해 발표를 했습니다.
그 요지는 재산세와 종합토지세의 과세표준(과표 현실화율)이 매년 3% 정도씩 올려 앞으로 5년간 누적하여 20% 포인트 정도 올린다는 것입니다.
재산세는 과표가 높아지면 세율도 따라 오르는 누진율(累進率) 체계이기 때문에 실제 세액 인상률은 과표 인상률보다 훨씬 가파르게 됩니다.
즉, 과표를 3% 올리면 세금이 3%만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최고 20~30% 정도 오르는 효과가 있습니다.
고액 연봉자일수록 근로소득세를 많이 내는 원리와 같다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를 인상하는 대신 거래세인 취득세와 등록세는 줄이기로 했다 합니다.
(양도소득세는 세수 축소의 이유로 거론치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개편안은 너무 약하고 혹평을 하자면 세수 확대의 의미 밖에는 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1가구 1주택자들에게 세금을 올리면 시장 가격에 반영되는 결과만 낳습니다.
게다가 취득세와 등록세를 감면해준다는 것은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을 도와준다는 의미 이외는 없습니다.
이번 조치에 담긴 정부의 메시지는 “무주택자들이여 빨리 집을 사서, 보유세를 많이 내 주시요.”라 하겠습니다.
부동산 정책에 연계된 보다 강력한 세제 개편이 나와야 할 때입니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