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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글모음/아기곰님 글모음

남이 하면 투기, 내가 하면 투자?(2003/06/25)

by 크레도스 2011. 10. 25.

‘부동산’이라는 단어와 ‘투기’라는 단어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처럼 쓰입니다.
부동산 열기가 뜨거워지면 언제나 등장하는 것이 ‘투기’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투기는 무엇이고 투자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투기의 사전적 의미는 단기간에 대폭적인 가격변동이 있을 것을 예견한 매매행위를 말합니다.
투기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speculation’인데 원래 이 뜻은 추측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영어의 어원적 해석에 따르면 ‘불확실하고 고위험이 따르는 투자 행위’를 투기로 보는 것 같습니다.
투기를 위한 매매가 실거래와 다른 점은 그 동기가 가격의 등락 차의 취득에만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투기의 거래 대상이 되는 것은 가격 변동이 심함과 동시에 전망을 예측하기 어려운 주식이나 상품, 부동산 등에 집중한다고 보면 됩니다.

또 긍정적인 의미인 투자(投資:investment)와의 혼용이 많을 수 있는데, 투자는 그 결과로서 또 다른 경제적 효과를 노리는 것이고, 투기는 단기 차익을 얻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굳이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투기와 투자를 구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극히 곤란합니다.

주식 시장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주식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경제 요소중 하나입니다.
주요한 경제 주체인 기업에 자본가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자본주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주식 시장을 활성화 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많은 자금이 주식 시장을 통하여 기업에 흘러 들어가서 플러스 효과를 가져오고 투자자에게는 배당 수익과 프리미엄을 안겨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전적 의미로 고지식하게 주식 시장에서 투자와 투기를 나누어 본다면, 배당 수익을 노려 자금을 투여하는 것은 투자, 시세 차익을 노려 주식을 사는 것은 투기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년 이상의 장기 보유자는 투자자, 그 이하 보유자는 투기꾼으로 보고 특히 데이 트레이더는 전문 투기꾼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만약 누가 증권회사 앞에 가서 이러한 주장을 편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기가 쉽습니다.
그것이 투자와 투기를 명확히 가르기 힘든 점입니다.

투기 사례로서 많이 나오는 것이 17세기 네델란드에 있었던 튤립 투기 사건입니다.
튤립이 터키에서 유럽으로 유입된 것은 16세기 후반으로 이것이 순식간에 각국으로 퍼져 17세기 초에는 귀족이나 대상인 사이에 크게 유행하였다 합니다.
네덜란드에서도 재배 개량이 진척되어 1610년경부터 수많은 품종이 비싼 값에 거래되었으나 이 무렵의 거래 관계는 직업적인 원예가나 애호가로 제한되었고 현물 거래였기 때문에 투기적 요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수확할 알뿌리의 선물 거래가 시작되면서 투기가 조장되어 1633년에는 상류층은 물론, 기술자, 하녀에 이르기까지 앞을 다투어 선물 거래에 몰려들었고, 이러한 현상은 1636년 절정에 달하여 이중 삼중의 문서 거래가 행하여졌고 1637년 2월 마침내 공황을 일으켜 값이 폭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공황은 생산의 확장에 기인하지 않은 전(前)자본주의 공황의 대표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실물이 받쳐주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한 가치에 대한 투자가 투기화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몇 년 전에 광풍처럼 불었던 닷컴 기업 열풍은 투자일까, 투기일까요?
그 당시에도 수익 사업으로 증명된 비지니스 모델은 많지가 않았습니다.
그때 코스닥 주식을 샀던 사람들은 모두 투기꾼 일까요?

어디까지가 투자이고 어디서 부터 투기인지는 나누기 힘든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경제학 적으로는 어떠한 행위가 경제적 가치(Value)를 창출하면 투자이고, 그렇지 못하면 투기로 봅니다.
주식 투자금이 회사로 들어가 산업 자금이 되고 그 자금을 근간으로 새로운 경제적 가치가 창출 되기 때문에 주식은 투자입니다. (플러스 섬 게임)
그러나 도박이나 경마는 전체 가치는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소유만 바뀌기 때문에 이는 투기입니다. (제로섬 게임)

투자가의 입장에서 보면 ‘의도’와 ‘합법성’ 여부가 투자와 투기를 구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의도가 있느냐에 따라 투기 여부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분양권 거래에 있어서 실입주 목적으로 구입하면 투자, 단기 차익을 목적으로 구입했으면 투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행위만 가지고 투기 의도 여부를 판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사전적 의미의 시각으로 볼 때 시세차익을 노려 주식을 샀다 팔았다 하는 것은 투기로 보아야 하는데, 이를 투자 인지 투기인지를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회사의 사업성이 좋아보여 투자를 했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사업성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 그 주식을 판 투자자와 단기 차익을 노려 그 회사의 주식을 샀다 판 투기꾼은 의도는 다르지만 행위 자체는 100% 같기 때문에 그 의도를 입증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주식을 샀다 팔았다 하는 것 자체만 가지고 투기꾼이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살펴보면 ‘투기’라는 용어, ‘투기꾼’이라는 용어는 경제 용어 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용어에 가깝습니다.
부동산 사이트에 네티즌들이 올린 글들을 읽다 보면 투기꾼이라는 용어의 오남용이 너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건축 아파트의 소유자 및 구매자, 일가구 다주택자, 강남 소재 아파트의 소유자, 임대주택 사업자등이 단골 투기꾼으로 등장합니다.
심지어 일부 극단적인 네티즌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실수요자까지 투기꾼으로 매도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이들 투기꾼(?)을 잡으려면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각 개인이 처한 입장에 따라 경제나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시각을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법의 안정성을 지켜야 할 정부가 여론 뒤에 숨어 이들을 ‘마녀 사냥’의 희생양으로 삼는다는데 있습니다.
가끔 신문을 보다 보면 정부에서 투기꾼을 단속한다고 하고, 꼭 강남에 아파트 10여 채를 보유한 의사 이야기, 10여 채를 소유한 전업 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들이 투기꾼인지 아닌지 여부는 거래의 합법성이나 그 과정상에서 발생되는 세금을 탈루했냐는 여부로 판단되어야지 소유 그 자체가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들이 돈이 어디서 나서 집을 그렇게 많이 샀겠는가?”와 투기 행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소득세나 증여세의 탈루 행위는 당연히 법의 제재를 받아야 하지만 소유 행위 자체가 투기는 아닙니다.
일부 전문직 종사자에게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국세청 책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국세청이 투기 혐의가 있다고 발표한 유형은 다른 지역 거주자로 재건축 아파트를 취득한 사람, 만 30세 미만인 재건축 아파트 취득자, 취득 후 1년 이내에 판 단기 양도자, 재건축 아파트를 2회 이상 사고 판 사람 등이라 합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보면 이들이 투기꾼으로 보일수 있어도 법 논리로만 보면 어느 하나 법을 어겼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래의 합법성 여부와 그 과정 중에서 발생되는 세금을 탈루했느냐의 여부가 투기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즉, 거래가 금지된 지역 내에서의 부동산 거래나 거래가격 축소 기재 (다운 계약서 작성)등을 통한 양도소득세의 탈루등은 당연히 투기 행위로 지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이 법의 형평성입니다.
만약 어떤 법 하에서 그 법을 지키는 사람은 손해를 입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경제적 이익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 이익과 준법 사이에서 고민할 것입니다.
더구나 지키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법이 있다면 그 법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학교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고 할 때, 몇 백 미터 걸어서 횡단 보도를 통해 길을 건너는 A라는 학생과 무단 횡단을 하는 B라는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 보죠.
A라는 학생은 법을 잘 지키는 것이고 B라는 학생은 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학생이 B와 같은 길로 통학한다고 할 때 A라는 학생만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누구의 잘못일까요?
1차적으로는 A를 제외하고 무단횡단한 모든 이가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현실을 무시하고 통학로에서 먼 곳에 횡단보도를 만든 당국의 잘못이 큽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실제 현실에서는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무시한 과세 표준이나 세율은 종종 선량한 사람을 탈세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정직하게 세금을 다 낸 사람은 경제적 손해를 입고, 편법으로 탈세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사회는 이미 병든 사회입니다.
이런 법들이 실제로 없는지 당국에서는 점검을 해야 합니다.

경제적, 법적 정의를 떠나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라는 투기의 정의에 관한 우스개 소리 비슷한 뼈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가장 현실감 있는 투기의 정의가 아닌가 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투기에 대해서 분노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분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마녀는 의외로 가까운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은행 대출을 받아서 내집 마련을 한 직장 부하 사원일 수도 있고, 큰 집으로 늘리고자 집을 한 채 더 마련한 손아래 동서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상 사회는 희생양을 요구할 개연성은 언제나 있습니다.
중세 유럽의 마녀가 그랬고, 근세 유럽의 유태인이 그랬고, 현세의 ‘빨갱이’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감시하고 심판해야 할 정부에 있습니다.
투기꾼이라는 마녀를 만들고 여론 뒤에 숨어서 정부 정책의 실패를 호도해서는 안됩니다.
국민이 무엇을 해야 되고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를 명확히 밝혀야 하며, 그리하여 그 합의를 지킨 사람은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고, 지키지 않은 사람은 손해가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광의의) 정부는 룰을 만들고 선수들이 룰을 지키는가를 감시하는 심판이어야 합니다.
그 경기의 참여자들이 룰을 지키지 않는 것이 일반화되고, 그 룰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이득을 취하게 되는 것을 보게될 때 많은 사람들은 그 경기 자체에 의문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첨언)
최근의 정부의 정책을 보면 중심을 잃은 것 같습니다.
수도권에서 분양권 거래는 ‘투기’이고, 지방에서의 분양권 거래는 ‘투자’라고 국민에게 말하고 싶은 것인지, 정부에서 지정해 준 곳에 부동산을 매입한 것은 ‘투자’이고, 강남에 부동산을 매입을 하는 것은 ‘투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전국이 부동산 광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손을 놓고 있다가 ‘투기꾼’이 준동한다고 떠들지만 말고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투기꾼’이 되지 않도록 사전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마녀를 만들어서 국민을 분열시켜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부동산 광풍에 휩싸여 국민이 분열되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동안 우리의 경쟁자들은 성큼성큼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SARS의 진원지인 중국은 그 충격속에서도 7% 이상의 고성장을 향유하고 있는 반면 사스의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우리는 3%의 성장도 걱정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읽지 못하는 정부, 국민 분열을 자신의 표로 이용하려는 일부 정치인, 과장 보도를 일삼는 일부 언론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아기곰 (부동산 컬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윗글은 아기곰의 "How to Make Big Money"이란 책의 일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