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방에 가면, ‘향후의 미래가 어떻게 된다.’ 라는 주제의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보여지네요.
현재 세상이 불안하다 보니,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죠.
그렇지만, 그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죠. 그리고 다 읽고 다 안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거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니까요.
책만을 읽는다고 다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랍니다.
아마도 제가 하는 이야기들 중에는 이미 여러 책들에서 이야기하거나 겹치는 부분도 있거나 많을 거예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그 책을 제가 보지 않았어도 내 글의 내용이 비슷하거나 겹칠 수 밖에 없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제가 ‘예연’이라는 탁월한 혜안을 가진 사람이라 보시지만, 저는 평범한 그냥 주변의 나이 먹은 할머니에 불과하죠. 다른 분들처럼 연구하거나 이론을 만든 사람도 아니구요. 단지 다른 나이먹은 사람들 보다 지식을 많이 접하고, 왜일까를 많이 생각하고, 신문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보고 그런 것 뿐이죠.
아주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랍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어떻게 제가 예언을 할까요? 아니랍니다.
그럼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들은 무엇인가요?
‘예측’이랍니다.
‘예언과 예측’이 다른 것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일을 예상하면 그것은 ‘예측’이고, 아무런 바탕이 없이 앞일을 내다보는 것은 ‘예언’이겠죠.
즉, 제 이야기는 ‘모네타’에 올린 제 글에서도 수없이 이야기 했듯 ‘반복’의 법칙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뿐이랍니다.
과거의 일어났던 인간사회의 경험과 주변에 많이 구할 수 있는 지식을 토대로 향후에 어떻게 진화할 지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조합해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죠. 그래서 제 이야기는 감성이나 예언적인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사람 사는 세상을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랍니다.
결국에는 앞일에 대한 ‘경제’나 ‘미래’를 이야기 하려고 해도,
그 바탕에는 사람 사는 세상의 ‘철학’도 알아야 하고 부동산도 알아야 하고, 수학, 사회학, 지리, 국사, 세계사를 비롯해서 모든 것에 대한 지식과 그에 대한 자신의 기준이 있어야지만 그 지식을 조합해서 예측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부동산이나 주식도 단순히 그 한가지만을 안다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기에 ‘전문가’라는 것은 모든 분야의 지식과 심지어 ‘사람의 심리’까지 공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전문가’가 세상에 그리 많지는 않겠죠?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전문가는 전문가가 그래서 아니랍니다.
‘현재는 미래의 자화상이다.’에서도 이야기 했듯, 미래란 것은 사람 사는 모양새를 보면 그리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랍니다. 결국에는 ‘지혜’라는 것도 많은 지식이 모여야지만 지혜로운 것을 말로 만들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식이 많이 있다고 지혜가 있다는 것은 아니랍니다.
단지,
‘지식’은 ‘지혜’를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적 의미만을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지혜’가 있어도 표현할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지식’은 방법을 알려주죠.
모두가 다 아시는 ‘앨빈 토플러’가 1970년대 쓴 ‘미래쑈크’라는 책을 보면,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예언’처럼 보인답니다. 그러면, 이 ‘앨빈 토플러’에게 내일 주가가 몇 포인트하고, 어느 주식을 사야한다고 물어보면 다 맞을까요?
안 맞겠죠.
왜냐면, ‘앨빈 토플러’역시 ‘과거의 반복된 지식’을 조합하여, 이에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여러 과학적인 추론을 조합한 결론을 낸 것으로 미래사회를 예측한 것뿐이랍니다.
그 이후에 ‘제 3의 물결’이나 ‘권력이동’등도 다 똑같은 것이죠.
‘예측’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수반되었을 테고, 가지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예측 가능한 미래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이런 조합한 지식들에 대한 결론이 동일하면,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이야기 한 적이 없어도 책이나 이야기의 내용이 동일하겠죠. 그래서 유명한 미래학자들의 이야기나 책이 비슷한 것이랍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한국 30년’의 ‘환경’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아직 본 이야기는 시작도 안했죠. 왜냐면 그 이야기를 하려면 그 이전에 현재사회의 ‘환경’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책 한두 권의 분량 정도만을 제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답니다. ‘환경’이라는 것. 이 이야기가 50번째 정도면 마칠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나면, 본 이야기인 ‘한국 30’ 년의 다른 이야기인 ‘변화와 준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거예요.
이 이야기는 더 길겠죠.
누구에게 ‘현자’의 칭호를 얻는 것이나, 성공하는 것이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이나 태어나면서 누군가에게만 특별한 능력이 쥐어지는 것이 아니랍니다.
결국에는 모두가 그만한 노력과 자신만의 기준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바로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현자’나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예언가’라 불리울 정도의 미래학자들은 과거 세상의 반복된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서 스스로의 기준으로 조합을 하여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이죠. 결국에는 미래예측이라는 것은 직감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과학’이랍니다.
그래서 ‘예측’이 맞는 것이죠.
시중에 나와있는 책 다 보시기도 힘들뿐더러,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요구된답니다. 그리고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까지 알려고 하면 바탕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는 수 많은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 놓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면 ‘바탕’을 이해할 수는 없답니다.
그 시간을 제가 제 나름대로의 가지고 있는 기준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고, 이는 제가 죽기 전까지 여러분이 그 단계에 올라설 때까지, 준비할 때까지, 기준을 세울 때까지 필요하신 분들에게 대신 이야기 해 드리는 것뿐이랍니다.
제가 평생을 같이 이야기 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제 나이 올해 일흔하고 여섯인데 저 보다 젊으신 분이 대부분이시겠죠?
‘불의의 사고’로 아마 저보다 먼저 세상을 등지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경험상 나이 먹은 사람이 먼저 세상을 등지니,
제가 여러분보다 먼저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이렇게 결론 낸 바로, ‘예측’ 이랍니다. 불의의 사고는 ‘예언’인데 이것을 누가 알까요?
‘죽음’이라는 것은 그 누구나에게나 오는 당연한 자연법칙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산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죽죠.’
그리고 저 또한 머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 여러분보다 먼저 죽겠죠.
세상을 무한하다든지, 불멸이라든지 이런 생각과 시야로 보지 마시고, 그냥 결승점인 죽음에 갈때까지 어떤 길로 갈지만 생각해보세요.
누구든 죽음이라는 결승점을 향해서 가지 않는 사람은 없답니다. 결국에는 모두가 다다를 결승점에 가기까지 人生을 어떤 모습으로 살지는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죠.
돌아온 人生을 보면, 후회가 없을 수는 없겠죠.
단지, 남들보다 값지게 시간을 쓰고 본인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그것으로 결승점에서 웃으면서 떠날 수 있는 것이죠.
저 또한 이제 그 결승점이 보이려고 하지만, 단 한가지 바램은 그때가서 뒤를 돌아볼 때 후회는 있어도 웃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죠.
그것을 바라기에 원하기에 그리고 예측하고 싶어하기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소중히 하고 있는 것뿐이죠. 지금 글 쓰는 것 조차도 말이죠.
글 다 써놓고 한해를 시작하는 글에서 못다한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제 이야기를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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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지난번 이야기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할게요.
지금 한국에서는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죠.
남자들도 장가를 가면서 대부분 맞벌이를 원하니까요. 그러면서 동시에 아이 가지기를 꺼려하죠.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 일 테고요.
12월 13일 한국은행에서 가계대출 통계를 내 놓았죠.
올해 3분기 은행과 제 2금융권 가계대출에서 주택대출을 제외한 순순 생계형 대출 잔액이 245조 2천억 원이라고요. 1년 전보다 20조 늘어난 금액이죠.
‘생계형대출’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높은 물가와 부족한 생활비, 학자금, 병원비등으로 인해 필요한 돈을 금융권에서 빌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이 대출중의 상당부분이 소득이 없는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층들과 노인들의 병원비와 생활비가 주를 이루겠고요.
문제는 이 돈들이 어디에 투자를 해서 생산을 일으켜 소득을 창출하는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이 돈이 없거나 모자라서 빌린 돈이다 보니 못 갚은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또한, 소득이 적거나 없는 계층을 넘어서, 전 월세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서 소득이 있는 직장인들 조차도 생계형 대출에 많은 의존을 해야 했고, 더욱이 늘어나는 교육비와 높은 물가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 조차 대출 없이는 살기 어려우니 실로 한국이라는 사회가 어떤 상황인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이전에도 몇 번이나 말씀 드렸지만, 지금의 상황은 과거와 달리 부동산 투기 등을 이야기 하시면서 부동산 대출을 문제시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부동산 대출이 그 핵심이죠.
그렇기에 문제가 더 큰 것이죠.
돈이 있는 사람들은 그냥 투자로 접근했기 때문에 보유한 부동산을 팔거나 재투자해서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되겠지만, 문제는 지금의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은 대부분이 생활비가 필요로 한 ‘생계형대출’인 것이 문제겠죠.
이 이야기를 왜 했냐면, 그 속도가 늘어나는데 그 주체가 소득이 전혀 없고 연금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년층이 그 부채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죠.
소득이 없어서 부동산이 경매에 내몰린다고 해도, 결국에는 없는 사람이 집을 사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임대를 목적으로 하는 혹은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층이 결국에는 가져가는 것이죠.
만일 이런 노년층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가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좋은 것은 부자들이지 절대 서민들이 아니랍니다.
부동산 경기의 하락은 건설경기의 하락으로 이어질 테고, 이는 거주할 집의 공급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렇게 되면, 기존의 월세와 전세가격은 급속도로 높아질 거예요.
결국에는 자본주의 하에서는 ‘수익’이 되는 곳으로 돈이 몰릴 수 밖에 없으니, 이런 집들을 어느 한쪽에서는 이를 대거 취득한 후, 결국에는 시장에 신규로 새로운 집이 나오지 않다 보니 기존의 임대한 집에 월세를 올리는 수단으로 밖에 변질 되지 않겠죠.
요즘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무엇인가요?
바로 ‘대학 기숙사’죠.
학생들에게 받는 적은 숙사료로는 신축을 해서 수익내기가 어려우니, 대학에서는 기숙사를 민간에게 위탁하고, 민간은 새로 지은 기숙사에 민간 업자가 높은 임대료를 받고 있죠. 대학생들은 싼 방을 구할 수가 없으니 선택권도 없이 높은 비용을 내고 기숙사에 들어가고 있잖아요.
아무리 정의사회를 구현하고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욕심인데 이것은 누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죠.
결국에는 돈이죠.
한국에서 이런 노년층의 생계형 대출이 급증하는 것은, 나이를 먹고 자녀들의 교육비를 비롯해서 돈이 들어갈 곳은 늘어나고 많아지는데, 노동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랍니다.
자 그렇다면 다시 일본을 볼게요.
한국에서 노년층의 생계형 대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노후에 소득이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본은 ‘노인복지천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듯이, 이런 노후의 소득을 연금으로 해결하고 있답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이런 혜택에 모든 노년층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죠.
또한, 지금 청장년층에서는 모든 층에게 혜택이 다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이런 지금 노년층의 연금문제 보다, 바로, “나중에 내가 받을 수 있겠냐?”의 불신의 문제가 더 크죠.
한국에서만 ‘연금’에 대한 불신의 문제가 큰 것이 아니라, 일본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답니다.
이런 연금불만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2007년 발생한 연금기록 누락문제죠.
일본 사회보험청이 연금기록데이터에 자료 처리과정에서 과거 납부한 납부자를 확인할 수 없는 기록이 약 5,000만 건이 발생한 것이죠. 그래서 내고도 못 받는 연금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문제가 심각해 진 것이고 이런 피해는 결국 수급자에게 돌아갈 테니까요.
또한, 부모가 죽은 것을 신고하지 않고, 노령의 부모에게 지급되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세대들도 상당수 일본사회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연금이 세어나가고 있는 것이죠.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일본사회에서 ‘연금’에 대한 불신은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젊은 사람일수록 그 불신이 강하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겠지요.
이런 ‘기초연금’과 ‘후생(공제)연금’은 못 받는 사각지대도 많을뿐더러, 이처럼 수급대상자들 조차도 불신이 있고, 현재의 연금액만으로는 생활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다 보니, ‘연금천국’, ‘노인천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도 연금이 노후를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인식이 팽배 하답니다.
그나마 대기업에 다니면서 ‘기초연금’과 ‘후생연금’이외에 ‘퇴직연금’이라는 것을 기대하는 직장인들도 작년에 일본 최대의 항공사의 JAL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퇴직연금’조차도 노년을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방안은 아니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으로 퍼져나가고 있답니다.
JAL이 작년 1월에 파산하여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기업연금’ 때문이죠.
JAL항공을 비롯한 JAL그룹 노조의 압력으로 JAL직원이 퇴직 후 받게 될 기업연금이 연 4.5%의 약속된 이율로써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해 놓았으니, 금리가 0%인 일본에서는 대단히 매력적일 수 밖에 없었죠. 물론 운용을 잘 하면야 상관없겠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투자금의 대부분을 손실을 보게 된 것이 문제가 된 발단이었답니다.
퇴직 후 기업연금만 40년 근속했을 때, 월 25만 엔을 가져가니 그만큼을 회사로써는 적립금으로 그에 상당하는 돈을 축적해야 하는데, 기입자가 1만 6천명에 수급자가 9000명이라면, 돈을 지급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수치죠.
일본 기업의 평균 ‘기업연금’ 수령액이 10~15만엔 인데 비해, JAL 퇴직자는 그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을 연금으로 지급해야 하기에 회사가 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2011년, 올 3월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났지만, JAL의 직원들은 연금 53%를 삭감하고 1만 6천명의 직원을 감원했죠.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에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최후의 연금인 ‘퇴직연금’ 마저도 이같이 무너져 버렸죠.
한국보다 몇 배는 더 두터운 연금제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조차도 과거의 ‘연금대국’이라는 명예를 내려놓아야 할 날이 멀지 않은 듯 보여지네요.
그럼 지금 연금을 내고 있는 이십 대에서 사십 대 혹은 50대의 젊은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이 땅에서 살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그 답은 어떻게 보면 유럽의 선진국이나 일본과 같이 먼저 노령화 되는 사회에서 찾아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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